"후퇴하면 나부터 쏴라"..'전쟁영웅 백선엽' 다부동에 우뚝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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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면서 북한의 침략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다부동 전투'의 주역 백선엽 장군 동상(높이 4.2m, 너비 1.5m)이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제막됐다.
경북도는 지난해 12월부터 추진한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사업을 완료하고, 5일 오후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장군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 및 서거 3주기 추도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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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안동=김장욱 기자】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지난 1950년 8월21일 한국전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 낙동강 지구 다부동 전투에서 후퇴하는 아군에게 이같은 절체절명의 명령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2만여명의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3분의 1에 불과한 아군에게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마음으로 싸우라는 지시였다. 백 장군은 돌격 명령 이후 선두에서 앞으로 먼저 달려 나아갔다. 이에 병사들도 사단장의 뒤를 따라 돌격했고 삽시간에 고지를 탈환했다. 백병전이 난무했던 다부동 전투에서 아군이 패할 경우 한반도는 공산군에게 완전히 점령되는 위기를 맞을 뻔했다.
낙동강 방어선의 정면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돌파당했다면 임시수도인 대구가 곧바로 함락되고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남은 것은 미군의 철수와 함께 한반도의 공산화였다.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여 명의 총공세를 한 달 이상 기적적으로 막아낸 덕분에 유엔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백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후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엔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
한국전쟁의 최대 변곡점이 된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에 영웅 백선엽 장군이 5일 다시 돌아왔다. 백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이날 칠곡군 다부동에 우뚝섰다.
경북도는 지난해 12월부터 추진한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사업을 완료하고, 이날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장군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 및 서거 3주기 추도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특히 지난해까지 민간에서 개최해왔던 '백선엽 장군 서거 추모행사'를 올해 처음으로 경북도, 국가보훈부, 육군본부, 칠곡군이 공동 주최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사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백 장군 동상 건립사업은 민간에서 주체가 돼 지난해 12월 21일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동상은 총 사업비 5억원(국비 1억5000만원 도비 1억원, 성금 2억5000만원)을 투입해 제작됐다. 성금 모금 활동에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로 제작된 동상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를 담아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높이 6.5m)보다 약간 작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오늘날 자유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호국영령과 6·25전쟁 시 참전용사와 지게부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칠곡군 다부동 일대에 '호국 메모리얼 공간' 등을 조성해 자라나는 세대들의 호국·안보 교육 장소로 만드는 등 경북을 대한민국 호국의 성지로 만들어가겠다"라고 강조했다.
6·25전쟁 다부동 전투 당시 지게부대원으로 참여한 지역주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 제막행사도 이날 열려 6·25전쟁의 숨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게부대는 다부동 전투 당시 지역민으로 구성된 민병대로, 지게에 탄약과 식량, 보급품 등을 신속하게 실어 나르며 치열했던 전투의 숨은 영웅들이다.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는 백선엽 장군의 장녀인 백남희 여사가 사비(1500만원)로 추모비를 건립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를 잇는 호국정신을 계승했다.
백 여사는 "아버님은 자신의 동상보다 주민 위령비가 먼저 서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기에 칠곡군과 함께 위령비를 마련하고 제막식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아버님이 못다 한 뜻을 이루고 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주민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이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칠곡군은 생전 백 장군을 칠곡 명예 군민으로 추대했고, 이에 화답하듯 백 장군도 휠체어를 타고 서울에서 칠곡군까지 내려와 지역 축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미동맹의 상징이기도 한 백 장군의 공로는 미국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 국립보병박물관은 백 장군의 6·25전쟁 경험담을 육성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으며, 6·25전쟁 회고록 '군과 나'는 미군 주요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백 장군의 생전 98세 생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로버트 에이브람스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의 군사 및 외교 주요 당국자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백 장군은 마지막 유언에서도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장녀 백남희씨는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다"면서 "한 가지는 유해를 바로 묻지 말고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들러 전우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백씨는 또 "다른 한 가지는 경기도 평택의 미군 부대를 찾아 부대 내 워커 장군 동상 앞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워커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백 장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 방어선인 '워커라인'을 사수해 승리를 이끈 전우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2주 동안 백선엽 장군이 포함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홍보 영상이 지난 4월 상영되기도 했다. 타임스퀘어에 자리한 삼성전자와 LG전자 전광판을 통해 매일 약 680회 송출됐다. 유엔군 초대 총사령관을 지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밴 플리트 부자(父子)와 윌리엄 쇼 부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 등도 10대 영웅에 포함됐다.
만주군 활동 이력이 백 장군에게 오랜 꼬리표처럼 따라 붙기도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에 대해 "역사적 인물에는 공과(功過)가 있는데 일부 사람들이 과(過)에 집착해 영웅들을 폄하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과 같이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인물들에 대한 보훈과 선양은 과감하게 추진해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백 장군은 해방 직후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백 장군 이런 이유로 근대화 국군 창설의 아버지로 손꼽힌다. 백 장군은 32세이던 1952년 최연소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이듬해 1월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 됐다.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1959년 합참의장을 지냈고, 이듬해 예편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 8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지난 2020년 7월 10일 향년 100세로 타계해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gimju@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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