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격정 낭만’에 빠지다

이정우 기자 2023. 7. 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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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가 헨델에는 낭만적 정취가 묻어났고, 현대 음악가 구바이둘리나에는 바로크 음악이 숨어 있었다.

조성진은 다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히 브람스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를 연주했다.

2부에서 조성진은 브람스 피아노 소품 op.76과 슈만 교향적 연습곡을 한 곡처럼 이어서 연주했다.

그런 면에서 이날 2부와 앙코르 때 연주한 슈만과 브람스, 라벨은 조성진의 다음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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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순회 리사이틀 첫 공연
헨델부터 구바이둘리나까지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시대를 가로지르며 아름답고 역동적인 음악을 들려줬다. 크레디아 제공

바로크 음악가 헨델에는 낭만적 정취가 묻어났고, 현대 음악가 구바이둘리나에는 바로크 음악이 숨어 있었다. 낭만주의 시기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은 한 몸같이 연결됐다. 그리고 이 모든 음악에는 조성진의 낭만이 살아있었다.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바로크에서 고전, 낭만에서 현대를 아우르며 클래식 계보를 재정의해나갔다. 섬세하게 설계된 프로그램하에서 조성진은 과격에 가까운 과감함으로 자신의 음악을 열정적이면서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조성진의 지휘 아래 이들의 음악은 긴밀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구조물을 이뤘다.

조성진은 첫 곡 헨델의 건반 모음곡 5번 E장조 HWV 430을 피아노 페달을 일절 밟지 않고 단정하게 연주하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그런데 다음 곡 구바이둘리나 ‘샤콘느’에서 조성진은 헐크로 변했다. 조성진은 등 근육을 모조리 사용하려는 듯 어깨를 최대한 벌리며 강렬히 음을 찍어 내렸다. 조성진의 박력에 충격받은 관객석은 숨 막힐 듯 고요해졌다. ‘샤콘느’는 단연 이날 공연의 발견이었다.

조성진은 다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연히 브람스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를 연주했다. 바로크 음악을 인용하면서 고전과 후기 낭만의 감수성까지 결합한 걸작이다. 조성진은 별빛을 걷듯 사뿐사뿐 내딛다가도 어느새 의자 위로 뛰어오르며 격정적으로 건반을 때렸다.

2부에서 조성진은 브람스 피아노 소품 op.76과 슈만 교향적 연습곡을 한 곡처럼 이어서 연주했다. 낭만이란 공통의 뿌리를 가진 브람스와 슈만은 조성진과 잘 어울렸다. 조성진의 유려하고 역동적인 터치는 관객을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인도했다. ‘교향적’이란 제목처럼 피아노만으로 오케스트라에 버금가는 다채로운 음색과 깊이감을 선사했다

이날 관객들은 줄곧 숨죽인 채 조성진의 음악을 ‘영접’했다. 앙코르로 연주한 라벨 ‘거울’ 중 3곡 ‘대양 위의 조각배’와 4곡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는 환상적인 터치가 돋보였다. 특히 3곡에서 그가 구현한 반짝이는 듯한 영롱한 물결의 모습은 이 피아니스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게끔 했다. 조성진은 커튼콜 때 무대 왼쪽 구석으로 이동해 상대적으로 자신을 보기 어려웠던 공연장 오른쪽 관객들에게도 인사했다. 마지막 앙코르 무대가 끝나고는 관객석에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포옹했다. 폭우를 뚫고 25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대거 기립하며 그의 음악에 경의를 표했다.

이날 조성진은 조성진스럽지 않았다. 과한 제스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그는 이날 몇 번이고 돌변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앙코르로 ‘거울’을 연주할 땐 자리에서 눕다시피 하며 왼손은 의자를 짚은 채 오른손으로만 피아노를 어루만졌다.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역시 조성진이었다. 서정적이면서 격정적이고, 유려하면서 격렬한 그의 연주에 낭만이란 파도가 물결쳤다.

이날 공연에서 연주한 헨델의 건반 모음곡과 브람스의 변주곡은 그의 최근 앨범 ‘헨델 프로젝트’의 수록곡. 지난해 10월 성남아트센터 독주회에서도 연주했던 곡이다. 조성진은 9개월 전에 비해 정제된 감정으로 거침없이 표현했다. 흡사 이 레퍼토리는 통달했다는 듯. 그런 면에서 이날 2부와 앙코르 때 연주한 슈만과 브람스, 라벨은 조성진의 다음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 이어 8일 대전, 9일 부천, 12일 울산에서 전국 순회 독주회를 진행한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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