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人워치]"공적·사적연금, 역할분담해 상호보완관계로 가야"

김기훈 2023. 7.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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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인터뷰
성과부진, 사업자 책임 더불어 제도적 한계도 문제
디폴트옵션, 도입은 진전…효과 내는데 시간은 필요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 중 하나인 연금개혁. 현 정부 들어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연금개혁 논의가 재개된 가운데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기본 관점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이른바 3대 연금을 묶어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와 학계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국민연금의 보험료 수지 적자 전환 시점이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높은 보험료에 걸맞지 않게 운용성과가 부진한 퇴직연금에 대한 실망감이 맞물린 결과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사진=김기훈 기자 core81@

이와 관련해 최근 비즈워치와 만난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는 "국민연금은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공적연금, 퇴직연금은 민간에서 주도하는 사적연금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각자의 틀 속에서 서로 경쟁·보완하는 형태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논의가 너무 광범위해질 경우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연금의 본질이 희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영 이사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키움투자자산운용 등 금융업권을 두루 거친 국내 대표 연금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지난해 10월 신영증권 연금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회사 연금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연금 성과 부진은 '사업자 책임+제도적 한계' 

보건복지부가 올 초 시행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55년경 고갈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에 낸 것보다 많이 받도록 설계된데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세를 감안하면 예상보다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과 더불어 국민 노후 대비에 활용해야 할 퇴직연금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가입자가 대부분 대기업 근로자로 제한적인데다 이들에게 퇴직연금은 여전히 '연금'으로서의 인식보단 '일시적 퇴직금'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2005년 도입 이후 18년이 되도록 퇴직연금이 연금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 이사는 "국내 퇴직연금 제도는 중도인출이 잦고 효율적인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번에 도입되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나 현재 활발히 논의가 진행 중인 기금형 퇴직연금처럼 진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최근 퇴직연금을 공적연금의 틀 안에서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라며 "국민 노후 보장의 안정성을 위해선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상호 보완하는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퇴직연금을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낮은 수익률에 대해선 사업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데 공감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부진한 건 퇴직연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낮은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결국 자산배분 의사결정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각자의 투자경험이나 성향에 맞게 투자와 저축 비중을 정하는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업자들이 투자자들에 맞게 위험상품(투자)과 원리금 보장상품(저축) 비중을 컨설팅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이사는 실제 신영증권에 합류한 후 투자자 대상 컨설팅 서비스를 강화했다. 모든 자사 고객에 대해 전문 담당자(RM)를 지정, 상담·자문 서비스를 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매월 모델포트폴리오(MP)를 제공하면서 다양한 상품 중 어떤 상품을 골라 운용할지 안내하고 있다. 시장 상황이 급변해 미리 설정한 수익률보다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경우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별도 공지한다. 

퇴직연금의 제도적 한계도 수익률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견해다. 그는 "퇴직연금은 결국 가입자의 최종 의사결정에 따라 운용되는데, 이들의 투자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원리금 보장 상품 중심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넛지'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넛지란 강압 대신 부드러운 개입으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말한다. 민 이사가 먼저 넛지의 사례로 든 것은 조기 투자교육이다. 사회적으로 투자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막상 성인이 돼서도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국민들이 조기 투자교육 기회를 얻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에 투자할 때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회사 측에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는 게 민 이사의 생각이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사진=김기훈 기자 core81@

일임형·기금형 도입 필요…파격 세제혜택도 고려해야 

그는 아울러 일임형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일임형은 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입자로부터 운용권한을 일임받아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이며, 기금형은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 동의를 받아 수탁법인을 만들고 이 수탁법인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방식의 퇴직연금 제도다.

민 이사는 "일임형·기금형 방식을 도입한 뒤 기존 제도와 운용성과 및 효율성을 비교해보고 퇴직연금 가입자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활성화를 가로막는 대표 요인으로 지목되는 중도인출에 대해선 "퇴직연금 역시 근로자의 자산이기 때문에 중도인출을 강제로 막는 것은 개인재산 침해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그보단 퇴직연금을 실제 연금으로 활용할 때 연금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방식의 과감한 세제혜택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연금소득세율은 '55세 이상 70세 미만'은 5.5%, '70세 이상 80세 미만'은 4.4%, '80세 이상'은 3.3%다. 연금 수령 개시 시점이 늦어질수록 세율이 낮아지는 형태다.

그는 "현행 세제혜택은 중도인출을 막는 유인책이 되기에는 애매한 수준"이라며 "일각에서 연금소득세 면제 등을 두고 부유층에게 혜택을 주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지만 확실한 세제혜택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보다 이점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퇴직연금 활성화 차원에서 퇴직연금 의무가입을 제도화하자는 주장과 관련해선 경영상의 어려움 탓에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는 소규모 기업들의 사정을 좀 더 살펴야 한다고 봤다. 다만 이들 기업 역시 근로자 권리 보장 측면에서 퇴직연금 도입이 불가피한 만큼 퇴직연금 제도 도입에 있어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중퇴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디폴트옵션 효과는 시기상조…자산배분 어렵지 않아

이달부터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금융투자업계 내부에선 기대와 우려와 교차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선택한 디폴트옵션 전용 상품으로 자동 투자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민 이사는 "방치됐던 자산들을 강제적인 방식으로라도 운용할 수 있게 한 건 분명한 진전이라고 본다"면서 "다만 제도 도입 과정에서 세심함이 부족했던 터라 효과를 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디폴트옵션은 말 그대로 '옵션'이어야 하지만 현행 디폴트옵션 제도는 운용성과에 대한 책임을 고려해 근로자가 상품을 다 지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엄밀히 디폴트옵션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며 "여기에 상품 선정에 있어 옵션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업계 내 손꼽히는 연금 전문가로서 퇴직연금 투자자들에게 조언과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민 이사는 "대다수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연금 운용을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로 인해 젊은 가입자들조차도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투자하는 정기예금의 1년 수익률이 2~3%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회비용 측면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자산을 둘로 나눠 하나는 안정적, 하나는 초과 성과를 노리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성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정기예금 등의 원리금 보장 상품과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투자상품을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게 일정한 비율로 섞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김기훈 (core81@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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