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기적이다[편집실에서]
여느 때처럼 정류장에서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신문을 펼쳐 들었습니다. 툭 하고 뭐가 떨어졌습니다. 신문 거의 한쪽 전면에 얼룩이 졌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시원스레 볼일을 본 새 한 마리가 뭔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나뭇가지에 앉아 있더군요. 그날 그 시각에 그 새가 날아들었고, 하필 신호가 왔고, 그 나무 아래 한 사람이 펼쳐 든 신문을 정조준해 배설물을 떨어뜨려 정확하게 맞히기까지 할 확률. 과연 얼마나 될까요. 낙차에 따른 가속도가 붙어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온 상의에 ‘파편’까지 튀었습니다. 옷을 툭툭 털면서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버스에 올라타 생각을 해보니 불평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펼쳐 든 신문이 아니라 정수리에 떨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어깻죽지에 떨어졌다면 또 어땠을까요. 생각이 그에 다다르자, 오히려 다행이다 싶더군요.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 삭막한 서울 도심 한가운데로 날아와 자연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면서도 옷이나 머리가 아니라 신문지라는 목표물을 겨눠준 그 새의 배려심이 너무 고마웠던 거지요.
돌아보면 감사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나 혼자 잘한다고 각종 사고의 위험에서 안전할 수 없고,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세상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날 버스기사분이 접촉사고 한번 내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태워준 덕분에, 보행로를 건널 때 어떤 차도 교통신호를 위반해 갑자기 달려들지 않았기에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때 처음 들른 식당 사장님은 푸짐하고도 맛난 먹거리로 주린 배를 채워줬고, 조촐한 모임이 있어 저녁때 찾은 맛집은 이 더운 여름에도 상하지 않은, 신선한 안심 재료로 손질한 메뉴를 정성껏 내어 줬기에 다들 기분 좋은 포만감에 젖어 식당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무심코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니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 자체가 경이롭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정현종의 시 ‘방문객’ 중 일부)고 했지요. 현재는 물론 그를 있게 한 과거, 나아가 미래까지 온 우주와 연결된 그 사람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다가오는 거니까요.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돌아가신다는 것 또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부고 기사가 부쩍 눈에 들어옵니다. 경사(慶事)는 못 가도 애사(哀事)는 가급적 꼭 들르라던 선배들의 조언이 무슨 뜻이었는지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지난주 가까운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습니다. 빈소가 제법 멀었지만 달려갔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의 얼굴에서 백 마디 말과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을 보았고요. 영전에 도열한 유족들의 모습에서, 어느덧 장성한 자녀들의 어색한 표정에서, 황망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마을 어르신·친지들의 구수한 사투리, 걸음걸이, 보폭에서 오늘의 그 친구를 있게 한 우주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몸은 고됐지만 가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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