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 중심 질서 불가능…새 ‘복합 질서’ 온다”
한중관계가 위태롭게 표류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국제질서의 대전환, 북핵 문제, 대만해협 위기와 맞물린 대 중국 외교에 대한 원칙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아시아에서는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복합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중국의 위치를 인정하고 함께 할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주도질서가 지속될 것이란 판단과 ‘북한 봉쇄’ 정책으로 일관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로는 위기가 깊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조 교수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의 우발적 충돌 위험은 있지만, 미-중 모두 전략적으로 우선 순위를 정해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시대 중국 정치는 당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권력 집중형 권위주의’이며, 이는 전세계적 민주주의 퇴행 흐름과 맞물려 있다고 강조했다. ‘제로 코로나 3년’으로 자초한 청년·자영업·농민공의 ‘3중 실업 위기’를 얼마나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가 중국이 직면한 핵심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중국 엘리트와 통치 체제 연구의 권위자다. 한 주제를 10년씩 파고들고 중국 당정 간부들을 심층 인터뷰하며 중국을 깊이 들여다보는 연구를 해왔다. <용과 춤을 추자> <덩샤오핑 시대 중국> 3부작, <중국의 통치체제> 3부작에 이어, 다음 과제로는 중국 사회운동을 연구할 계획이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싱하이밍 중국대사의 ‘15분 발언’은 개인적 견해인가,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가.
“두 가지 모두로 봐야 한다. ‘전랑외교(강경한 ‘늑대전사’ 외교)’는 최근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외교관은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원래부터 있던 중국 외교의 이런 특징이 시진핑 주석 집권 뒤 국내 정치 못지 않게 외교를 중시하면서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외교관들에게 어느 정도 자율성을 주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라고 하자, 외교관들이 중국의 입장을 선전하는 활동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싱 대사의 발언도 그 일환이다. 그런데 이런 활동은 중국 외교 정책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현재 중국의 대 한국 정책이다.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중국은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윤석열 정부의 특징은 대중국 정책도, ‘정경분리’ 같은 전략도 없이, 중국에 대해 악화된 여론을 믿고 그냥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지만, 한국이 대결 국면으로 나가면 거기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은 중국 정부가 앞으로 최소한 4년간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표명한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지 않으면 관계를 개선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대만 발언’ 이후 중국은 ‘한국이 중국 핵심이익을 존중할 것’ 등 4가지 요구를 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만 문제에 대해 한국이 그렇게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번에 중국이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에 동의한 주된 이유도 대만이다. 내년 1월에 대만 총통 선거가 있고 미국도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에 들어간다. 지금 구도에서 미국 민주당 정부가 ‘대만 카드’를 이용하려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입장에서 최악은 미국 대선 과정에서 대만 이슈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것이다. 저는 중국이 대만을 실제로 무력으로 통일하려 하기보다는, 이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대만이 완전히 독립국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에 유럽연합, 일본, 한국까지 가세해 그것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중국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만 문제를 부각한 것을, 중국은 ‘선을 넘었다’고 보고 있다.”
―시진핑 시대 들어 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긴박한 문제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는 초조함 때문이라고 본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은 40년 가까이 지나면서 시효를 다 했다. ‘공산당 믿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해왔는데 그 목표가 달성되었으니, 그 다음에도 공산당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인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공산당이 계속 집권해야 하는 정당성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서 찾고, 그것을 위한 전제로 ‘대만과의 통일’을 상정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는 대신 치르는 대가이기도 하다.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 욕심과도 관련이 있다. ‘대만 통일’은 시진핑 개인의 아젠다이고, ‘마오쩌둥도 덩샤오핑도 못했던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즉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구체적 일정을 공식화한 것은 실수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에 대해 어떤 시간표와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3년 전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인민해방군 창군 100주년인 2027년까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자’는 내용의 전략문서를 작성했다. 작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두 번에 걸쳐 ‘2027년 중국 대만 침공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은 그것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파악하기로는 그 전략 문서의 내용은 2027년까지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하자는 게 아니라, 무력으로 공격할 능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미국 쪽에서 그것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밝힌 ‘2049년까지 대만 통일’은 먼 미래이고, 시진핑은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필요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내년 1월 대만 대선 이후 실제로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질 위험이 있는가.
“2005년 반국가분열법에서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때, 통일의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봤을 때 무력을 사용한다고 명시했다. ‘통일의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것은 대만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미군과 대규모로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없다면, 중국이 먼저 공격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지금 상황 대로라면 대만 대선에서 민진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지만, 민진당이 독립을 선언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즉, 시진핑 주석이 대만 무력통일 시간표를 정해놓고서 먼저 공격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세계의 주요한 전쟁 대부분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벌어진다. 미-중 전투기끼리 충돌하는 우발적인 사건이 났을 때 중국공산당도 양보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고 미국, 대만도 선거 앞두고 있어 물러서기 힘들다. 우발적인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은 우려스럽다. ”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으로 미-중이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려고 하나.
“중국이 생각하는 중요도에 따라 3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대만·홍콩 문제는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이 걸린 문제고 절대 타협할 수가 없다. 약간 타협하려 했던 사람은 덩샤오핑인데, 그때는 개혁개방을 안 하면 공산당이 권력을 잃게 되니, 개혁개방을 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하느라 대만 문제를 유보한 것이다. 그런데 후진타오 집권 말기인 2007~2008년 무렵부터 이 문제는 반드시 지켜야할 핵심이익으로 규정했다. 이것은 공산당이 권력을 잃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미국과 절대 타협 안할 것이다. 두 번째는 아시아 지역 안보에서 중국의 발언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이 미사일방어(MD)망, 한미일 협력, 쿼드(Quad), 오커스(Akus)를 엮어서 중국을 견제하는 ‘아시아판 나토’를 만드는 것은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니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에 반대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관계에서 이 순서대로, 대만 문제를 포함한 핵심이익에 대해서는 ‘타협 불가’, 아시아판 나토는 ‘어느 정도 협의 가능’, 디커플링에 대해서는 중국이 잘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협의할 것이다.”
―바이든의 “독재자” 발언 등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올 가을 바이든과 정상회담을 하려할까. 중국은 군사, 안보에 대한 대화는 왜 거부하고 있는가.
“중국이 보기에 미국이 대만 문제에 대협 타협 안할 것이므로 우리도 군사·안보에서는 타협 안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얘기하겠다고 한다. 이번에도 중국은 블링컨 국무장관보다, 옐런 재무장관 먼저 방중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이 왜 그러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동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에게 ‘미국이 일방적으로 중국을 몰아붙이는 게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중국과 대화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 공화당으로부터 중국에 너무 나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독재자’보다 더한 표현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국 경제 제재를 보면 미국은 절대 손해보는 일은 안한다. 군사 안보적으로도 최후의 마지노선은 항상 유지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미국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국제 정세를 끌어가려는 그런 주도 면밀한 외교를 하고 있다. 일본도 군사·안보는 미국과 함께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하다. 대만 차이잉원 정부도 독립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전혀 아니다. 경제, 사회적으로는 교류할 거 다 하면서 이익을 챙긴다. 한국은 전혀 그런 국제적 비전이 없이 ‘동원되고’ 있다. 어떻게 책임을 지려는지 우려스럽다.”
―중국이 7월부터 시행하는 ‘반 간첩법(방첩법)’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다. 요즘 중국이 반 간첩법, 빅데이터 통제 등 안보 위기를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이 추진했던 ‘도광양회’ 정책은 ‘우리 할 일을 하면서 평화롭고 안정적 국제질서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는 중국의 지위나 이익을 확보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일대일로’와 관련된 투자 2조달러를 포함해 4조달러를 해외에 투자했다. 이것을 지키려면 해외에서 군사적 투사 능력을 갖춰야 한다. 미국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바마 행정부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상황이 너무 심각하니까 제대로 못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힘으로 중국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시진핑이나 중국공산당 입장에서는 위기 의식이 커지고 안보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금 미국이 중국의 최우선 과제인 대만 등 핵심이익까지 건드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더 강하게 나갈 것이다.”
―중국 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역사상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청년 세대의 대규모 실업이 중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중국이 1999년부터 대학 입학생들을 매년 50만명씩 늘리기 시작해 2020년에는 1000만명을 넘었다. 이와 함께 플랫폼을 기반으로 연결된 창업과 서비스업 중심의 혁신 전략을 추진했다. 그런데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이런 연결이 다 끊어져버렸다. 대학 졸업생은 계속 느는데,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창업도 못하고 서비스업도 어려워지면서 심각해졌다. 청년 실업 외에도, 두 가지 실업 문제가 더 있다. 하나는 자영업자다. 중국은 3년 ‘제로 코로나’ 기간 동안 매일 2억명씩 봉쇄됐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유일하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은 나라가 중국이다. 공식 통계만으로도 ‘제로 코로나’ 3년 동안 3500만개 자영업이 문을 닫았는데, 실제로는 자영업 일자리가 5000만개 정도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세 번째는 건설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3억명 농민공 가운데 1억5천만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제로 코로나’로 인한 상황적 요인뿐인지, 구조적 요인이 더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장기화하면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 따라서, 현재 시진핑 주석, 리창 총리의 머릿 속에서 핵심 문제는 미국과의 대결도, 대만 문제도 아니다. 경제 문제 해결에 모든 걸 걸고 있다. 이 상태로 2~3년 가면 못 버틴다. 어느 정도 빨리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변수다.”
―현재 청년 세대의 애국주의가 정치·사회·외교에 실제로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현재 중국 청년들은 세 가지의 ‘분열증’을 겪고 있다. 이들은 한자녀정책 시대에 태어나 굉장히 개인주의적이고 개인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1995년 애국주의 교육이 본격화된 이후 성장한 이 세대는 집단적으로 모여 있을 때는 철저하게 집단주의자, 애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중국에서 말하는 애국주의는 국가·민족·공산당의 3위일체를 의미한다. 이것을 옹호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한국에 유학온 일부 중국 학생들이 공산당 비판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서 격렬하게 싸우는 게 이런 요소다. 또 하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은 무한 경쟁이다. 중국은 성공 신화가 널려 있는 한편 여기서 도태되면 죽는다는 철저한 경쟁주의가 몸에 배 있다. 이 세가지가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게 중국의 20~30대다. 이 세대가 철저한 애국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탕핑(躺平)’은 수백만명이 경쟁에 쫓아가지 못하지만, 기성질서의 가치에서 벗어나면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집 안에만 있거나 불교·도교 사원에서 명상에 잠기는 것인데, 경쟁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오히려 애국주의자들은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 애국주의마저 없으면 너무 견디기 힘든 사람들에게서 강하다. 한국의 극우 집회에서 보이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중국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시진핑 집권 뒤 중국 내 시민운동을 강하게 탄압했는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중국을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자유주의적 방향과 권위주의적 방향이 있는데,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후진타오 때 자유주의적 방향을 조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시진핑 집권 뒤에는 권위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갔다. 공산당으로 권력을 집권해 문제를 풀려는 ‘권력 집중형 권위주의’ 체제다. 중국공산당은 반체제적이고 공산당 이념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부분은 탄압하고, 다른 대부분의 사회단체들은 공산당의 우산 아래의 하부조직으로 재편했다. 거버넌스와 관련해 사회조직이 기층에서 하는 역할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런데 체제의 문제를 제기하고 경고를 울리는 시민사회의 중요한 역할은 죽어버렸다. 잘못된 ‘제로 코로나’ 정책을 3년이나 지속한 것도 시민사회가 살아 있었으면 당연히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단절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 때문에 중국공산당이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전세계가 민주주의 후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 통합과 소통의 문제를 보면, 지금 한국과 미국 사회는 중국보다 더 심각하게 보인다.”
―시진핑 주석의 집권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시진핑 주석 본인은 10년 정도 더 집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진핑이 3번째 임기를 마치고도 물러나지 않을 경우, 권력 승계 규범과 후계자 양성 시스템이 엉망이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인들, 엘리트의 대부분이 시진핑의 3연임은 지지했다고 보지만, 시 주석이 2027년 4연임을 한다면 여러 문제가 생길 것이다.”
―미-중 경쟁 속에 세계는 어떤 질서로 향하고 있는가.
“지금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는 혼란이 있다. 경제·군사력 등을 봤을 때, 미국이나 중국이나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지배하는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 중국 체제는 선진국에게 매력이 없기 때문에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가 온다’는 전망은 말이 안 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국제질서도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복합질서’가 나타날 것이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미국·중국·러시아·한국·일본 등이 발언권을 가진 ‘복합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2030년 이후에는 세계 경제의 60~70% 정도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물러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도, 일본도, 한국도, 아세안 10개국도 있는데 중국이 아시아를 마음대로 호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명·청 시대에 중국의 국력은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했고, 그 정도의 군사력과 소프트파워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게 가능하지 않다. 지금 상태에서 중국의 이념과 정치를 수용할 수 있는가?”
―중국의 이념과 정치에 변화가 일어나 중국이 좀 더 설득력 있는 대안적 질서를 제시할 수 있을까.
“지금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후퇴의 시대다. 중국의 현재 상황은 민주주의의 후퇴의 중국판으로도 볼 수 있다. 변화가 생기려면 (1974~1990년 남유럽·남미·아시아에서 일어난 3차 민주화 물결에 이은) ‘제4차 민주화 물결’이 와야 한다. 세계적 민주화 물결이 와야 중국도 그 바람을 탈 것인가, 아니면 중국이 민주화되어야 세계적 민주화의 물꼬를 열 것인가라는 논쟁이 있다. 지금은 힘의 논리가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설득력이 있다. 중국에서 민주화 물결이 시작될 유일한 가능성은 중국인들과 엘리트들이 ‘현 체제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합의를 이룰 때인데, 그럴 가능성은 20년 내에는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서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할까.
“중국의 입장은 양면적이다. ‘주권 영토 완정 존중’을 강조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게 원칙적 입장이다. 러시아와 협력하지만, 무기 지원은 안 하는 어정쩡한 관계다. 시진핑과 푸틴이 ‘무제한의 협력’을 과시한 것은 정치인들의 용어일 뿐이다. 중국은 매우 영리하다. 성과 없는 중재는 안한다. 얼마 전 중재협상 대표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파견한 것도,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할 뜻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쇼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중국이 나서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러시아도 중국이 중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협상을 해도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라는 조건을 러시아가 받을 수 있을까? 돈바스 점령 지역이라도 내놓으려면, 푸틴 개인뿐 아니라 푸틴의 집단이 권력을 포기해야 한다.”
―한중관계에는 미-중 전략 경쟁, 북핵 등 한반도 문제, 그리고 한국 국내 정치까지 얽혀 극히 복잡하다. 한국이 한중관계에 대해 어떤 목표와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는 게 좋을까.
“대중국 정책은 한국의 종합적 외교 비전을 어떻게 정할지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 외교의 특별한 과제인 한반도 문제와 국제질서 전반에 대한 대응을 같이 고려해야, 그 속에서 중국에 대한 정책이 나온다. 현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부유해지는 건 참을 수 없다, 북한이 개혁 개방을 못 하게 하겠다, 핵은 갖고 있되 굶어 죽게 만들겠다’는 봉쇄 정책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접점은 없다.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없고, 핵을 가진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서도 중국과 협력할 일이 없다. 저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그걸 사용하지 않게 하고 나아가서는 동결, 감축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봉쇄 정책은 해결책이 아니다.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야 되고, 그것을 위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 또 하나는 앞으로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판단이다. 보수 세력은 미국 주도의 체제가 무조건 선이고, 그것에 도전하는 것은 악이라고 본다. 저는 미국 주도의 체제가 선이라고 보지도 않고, 동시에 중국 주도의 세계가 온다고 보지도 않는다. 세계적으로는 상당 기간 미국이 주도하겠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복합질서’가 오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국, 북한과의 관계, 동아시아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한미동맹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선이고 계속될 거라는 전제 아래서, 한국의 국익이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외교를 하는 것은 반대다. 동아시아 지역 질서와 관련해서 중국의 위치를 인정하고, 함께 할 일은 해야 한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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