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자금 끊길 바그너, 리비아에서 다시 '석유 인질' 잡았나

김종훈 기자 2023. 7. 5.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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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그룹 지원받는 군벌 LNA, 리비아 원유수출 통제 조짐…50억 달러 석유공사 보조금 노렸나
군벌 리비아국민군(LNA) 수장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가운데)이 지난 4월 리비아 벵가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대표적인 친바그너그룹 인사로, 바그너그룹 용병 2000명과 함께 트리폴리를 공격해 임시정부 리비아통합정부(GNU) 축출을 시도한 바 있다./ 로이터=뉴스1
바그너그룹, 리비아 혼란 틈타 금광 사업에 무기·마약 밀수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이 일으킨 러시아 무장반란 사태의 여파로 아프리카 리비아까지 바짝 긴장했다. 리비아에서 온갖 불법을 저지르던 바그너그룹이 돈벌이를 위해 현지에서 극단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 최근 다시 불거진 리비아의 석유 수출 봉쇄 위기도 바그너그룹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4일 원자재 전문매체 아르거스에 따르면 현재 리비아에 주둔 중인 바그너그룹 용병은 1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리비아는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리비아통합정부(GNU)와 동부 군벌인 리비아국민군(LNA)을 기반으로 한 동부정부가 맞서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리비아통합정부를 정식 정부로 인정하고 있으나, 바그너그룹은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LNA 편에 서서 군사행동을 지원해왔다. 하프타르 사령관이 2019~2020년 수도 트리폴리 점령을 시도할 때도 바그너그룹 용병 2000명이 LNA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그너그룹이 LNA 편에 선 것은 돈 때문이다. 2020년 미국 국방정보국 보고서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은 LNA를 지원하는 대신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자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중동 전문매체 알모니터에 따르면 UAE 재정 지원이 끊기자 바그너그룹은 LNA와 동부정부에게 자금을 요구하는 한편, 현지에서 금광 사업과 무기, 연료, 마약 밀수 등을 통해 돈 벌이를 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에서 받는 재정 지원과 별도로 리비아에서 '수익 창출'에 나선 것이다.

원유산업 요충지 인근에 군부대 주둔 "바그너, 석유 수출 봉쇄 정책에 개입"
특히 바그너그룹은 리비아의 원유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리비아 원유 생산량은 일 116만9000배럴로,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일 118만4000배럴)에 이어 2위였다.

블룸버그가 데이터조사업체 나반티그룹의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은 에스 사이더 항구, 알 주프라 공군기지 등 원유 시추현장이나 수출입 터미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주둔해 있다. 바그너그룹은 이를 무기로 리비아 원유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무스타파 사날라 전 리비아 국영 석유공사 사장은 2020년 리비아의 석유 수출 봉쇄 조치에 바그너그룹이 개입했다고 밝혔다. 사날라 전 사장은 친군벌 인사 파르핫 벵다라에 밀려 옷을 벗었다. 로버트 유니액크 나반티그룹 선임분석가는 "바그너그룹이 석유 시설에 군을 배치하고 하프타르 사령관을 밀어준 덕분일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밝혔다.

지난달 동부정부는 국영석유공사의 부패를 막기 위해 재무감독관을 임명하지 않으면 또 석유 수출 봉쇄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군벌이 50억 달러(한화 약 6조5145억원) 규모의 석유공사 보조금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위협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리비아 전체 원유 생산량 중 4분의 3이 동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데다, 석유 수출 터미널 9곳 중 5곳이 동부에 위치해 있어 동부정부가 봉쇄에 나선다면 리비아 석유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바그너그룹이 이번에도 석유 봉쇄 위협에 개입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연설에 따르면 바그너그룹은 지난해 5월부터 1년 간 1660억 루블(약 2조4435억원) 규모의 러시아 재정을 지원받았다. 프리고진은 무장반란 실패 이후 벨라루스로 무대를 옮겨 용병활동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재정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다른 곳에서 군자금을 충당해야 하는 것.
"러시아서 반란 일으킨 바그너, 리비아에서는 어디까지 갈지 우려"
일각에서는 바그너그룹이 리비아에서 대대적인 군사활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알모니터는 리비아 현지 소식통을 인용, "현재까지 바그너그룹 부대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바그너그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러시아 정규군을 상대로 반란을 벌일 정도라면 리비아에서는 어떤 행동까지 가능할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바그너그룹이 (리비아에서) 봉기한다면 현지 상황은 극도로 불안해질 것"이라며 "리비아는 또 다시 내전에 빠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리비아가 또 석유 수출 봉쇄에 나설 경우 유럽이 원유 수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러시아 원유 수입금지 조치 이후 유럽은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에스 사이더 원유를 러시아 원유의 대체재로 활용해왔다. 아르거스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리비아의 원유 수출량은 일 99만9000배럴이었다. 유럽은 이 수출량의 79%에 해당하는 일 79만6000배럴을 수입해갔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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