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인터뷰]아리 애스터 "이 영화가 바로 나다"

손정빈 기자 2023. 7. 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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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미드소마' 아리 애스터 감독 내한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관객 찾아
"12년 전 쓴 시나리오 다듬어 영화화 해"
"가장 나다운 영화…날 깊이 파고 들어가"
"내 두려움 활용한 이 작품 코미디 영화"
"어렵지 않은 영화 마음 열고 봐줬으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최근 세계 영화계가 찬사를 아끼지 않은 장르영화 감독을 고르라고 하면 세 명 정도를 추릴 수 있다. '더 위치'(2015) '라이트 하우스'(2019) 등을 만든 로버트 에거스, '고스트 스토리'(2017) '그린 나이트'(2021) 등을 연출한 데이비드 로워리, 그리고 '유전'(2018) '미드소마'(2019)를 만든 아리 애스터. 이들 세 사람은 판타지와 호러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점, 이들의 작품이 단순히 장르영화라는 분류를 넘어서 한 편의 예술로서 완결성을 갖고 있다는 점, 각자 고유한 독창성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영화를 두고 우열을 가릴 순 없겠지만, 이들 중 누가 가장 널리 알려졌냐는 묻는다면 역시 아리 애스터(Ari Aster·37)다.

'유전'과 '미드소마'는 마틴 스코세이지·봉준호 같은 거장의 상찬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일반 관객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굳이 나누자면 에거스·로워리 감독이 상대적으로 마니아틱하다면 애스터 감독은 이들보다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과 '미드소마'가 워낙에 강렬한 영화였기 때문에 애스터 감독의 차기작엔 큰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그가 '보 이즈 어프레이드'(Beau Is Afraid)라는 독특한 제목의 영화를 배우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작업하기로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이번에도 무언가 근사한 것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을 전 세계 관객에게 심어줬다.

애스터 감독이 새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이 작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는 40대 후반 남성 '보'(호아킨 피닉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작처럼 호러 요소가 있는 영화이긴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 인간의 마음 속을 깊이 파고들어간다는 점에서 심리스릴러에 가깝고, 기괴한 유머가 판을 치는 코미디에 더 어울린다. '유전'과 같은 영화 혹은 '미드소마' 같은 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적지 않게 당황할 수도 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보라는 이상한 남자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 중에서도 엄마와 아들의 관계 안에 숨어 있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확인하려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내면 깊이 자리한 죄책감,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마음을 휘젓는 억눌린 감정들, 억압받다 못해 스스로 포기해버린 성적 욕구를 훑어 간다. 영화 공개를 앞두고 만난 애스터 감독은 트라우마·PTSD·과대망상·악몽을 오가는 이 영화를 "가장 나다운 영화"라고 했다.


-한국에 처음 왔다. 새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 온 소감부터 듣고 싶다.

"아시다시피 난 한국영화의 엄청난 팬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 오고 싶었다. 정말 기쁘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

"이 작품은 12년 전에 썼던 시나리오에서 출발했다. 당시 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서랍에 넣어놓고 잊고 있었다. 그 이후 '유전'과 '미드소마'를 만들었다. 이 시나리오를 다시 떠올린 건 '미드소마'를 끝낸 직후였다. 다시 읽어 봤는데 조금 수정해서 다시 쓰면 영화로 만들 수 있겠더라. 그렇게 1년 정도 시나리오 작업을 한 끝에 영화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떤 영화인가.

"가장 나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뭔가.

"우선 코미디 영화로서 이 영화의 유머가 나를 잘 반영하고 있다. 내가 가장 관심 갖는 주제,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들을 깊이 파고들 수 있었기 때문에 나다운 영화다. 내 가장 친한 친구들 역시 이 작품을 보고 '너 같은 영화'라고 말하더라. 그렇기 때문에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이 담긴 영화라는 얘기인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 작품엔 다양한 전형(典型)이 나온다. 아들과 엄마의 관계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관계에는 어떤 보편성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과 그 경험의 보편성이 다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어떤 것들이 개인적인 것인가에 관해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영화가 답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건 당신이 만드는 영화의 주요 소재로 보인다. 이번 작품 역시 가족은 중요한 테마다. 그리고 당신이 그리는 가족은 우리가 흔히 평범한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르게 보인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가족은 드라마의 원천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면서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는 게 가족의 특징이다. 내 영화 속 가족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라는 건 뭔가. 어떤 가족이든 그 관계는 쉽지 않다. 아무리 건강한 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서로에게 실망도 느낀다. 가족이 된다라는 건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관계의 겉모습을 한 겹 벗겨내야 가족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당신이 만드는 영화엔 묘한 긴장감과 공포가 있고, 당신 영화는 그런 긴장과 공포를 잘 표현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만의 연출 노하우가 있나.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난 실제로 많은 것들을 무서워 한다. 내가 무서워 하는 것, 무서워하는 상황들을 영화에 있는 그대로 집어넣으면 관객 역시 그것으로 인해 긴장과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 영화를 해석하려고 한다. '유전' '미드소마' 때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선 더 그럴 것 같다. 우선 영화가 길고, 각기 다른 콘셉트의 상황이 이어 붙여져 있는데다가 비유와 상징도 많은 것처럼 보인다.

"어렵다, 혼란스럽다고 말 하는데 난 이해가 안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하다. 한 줄로 말하자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제대로 살아보지 못 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봐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당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나 영화 보기 훈련이 된 관객에겐 당신 말처럼 쉬운 작품일 수 있지만, 평범한 관객이 보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영화에 몰입해서 따라가다보면 영화의 의도를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내 영화의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영화를 보는 게 어려워진다."


-이 작품엔 네 가지 공간이 나온다. 보가 각 공간을 이동하게 되면서 영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이런 공간 설정에도 분명히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일단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각 공간이 다른 공간을 비추는 거울의 방 같은 거라고. 관객이 스스로 파악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직접 다 설명하는 건 조금 어렵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첫 번째 공간엔 세상에 던져진 보가 있다. 두 번째 공간에서 보는 가족의 형태를 경험한다. 세 번째는 보의 상상 속 공간인데 보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가 갈림길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식인 거다. 그 다음 공간은 보 엄마의 집이고, 마지막 공간은 심판의 공간이다."

-많은 이들이 당신이 만드는 영화를 호러영화로, 당신을 호러영화 감독으로 규정한다. '유전'은 명백히 호러영화가 맞지만, '미드소마'는 온전히 호러영화라고 하기 어려웠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 역시 호러영화로 부르기는 어렵다. 호러영화, 호러영화감독이라는 정의에 만족하나.

"호러영화를 좋아하고 호러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호러영화 감독으로 불리는 건 좋다. 다만 당신이 말한 것처럼 '유전'은 호러영화가 맞지만, '미드소마'는 장르를 딱 떨어지게 규정하기 애매한 작품이고, 이번 영화는 코미디에 가깝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려고 한다. 차기작은 서부극이다. 그렇지만 날 호러영화 감독으로 부르는 데는 불만이 전혀 없다."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다. '유전'부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까지 세 작품을 모두 A24와 함께했다. A24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내가 '유전'을 발표했던 때쯤 A24는 크게 성장했다. A24는 이 회사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그들의 장점을 잃지 않고 있다. 그 장점은 하나다. 아티스트의 창작 자유를 전적으로 보장한다는 거다. 물론 작업 과정이나 편집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의견을 주고 받는다. 상영 시간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논의도 한다. 그러나 작업 중간에 개입한다거나 무언가를 강제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아티스트의 선택과 비전을 끝까지 믿어준다. 그게 A24만의 특별함이다. 그런 회사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는 당신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이런 영화를 끝낸 소감이 궁금하다.

"시원섭섭하면서 공허하달까. 나는 보의 세상에 애착이 많다. 나는 보의 입장, 보의 세계관이 이해가 된다. 그걸 떠나보내야 하니까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다. 이렇게 나를 영화에 반영해서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좋다.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작업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내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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