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의 굴레’…성토대회 ‘아우성’, “우린 가해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도 구제 받을 수 없어”
“사업장 규모 상관없이 노동권 보장” 근기법 개정 목청
지난해 7월 커피 로스팅 회사에 입사한 A씨는 사장에게 “넌 커피 만들지 마. 재능이 없어” “머리로 생각하고 일하냐” 등 폭언을 들었다. A씨는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 3월 해고됐다. 사장은 사내 메신저에 “우리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 해고가 자유롭다”는 공지사항을 올려뒀다. 사장은 A씨가 해고된 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자진퇴사’로 처리했다. A씨는 “경위서를 작성해 제출하자 그제서야 권고사직으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A씨는 “길거리를 가다가도 누군가 욕을 하면 법이 지켜준다. 그런데 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선 왜 상시 노동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가”라며 눈물을 훔쳤다.
국내 노동자 5명 중 1명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연차 유급휴가, 해고제한·부당해고 구제신청, 해고 서면통지,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연장 노동시간(주 52시간) 제한 등 근로기준법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4일 직장갑질119가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연 대한민국 5인 미만 직장인 성토대회 ‘아우성’에는 그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나왔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동권 보장 수준이 달라지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일했던 30대 학원강사 B씨는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료가 미납됐다는 고지를 받았다. 원장에게 항의했더니 해고예고통지서가 돌아왔다. 명백한 부당해고였지만 원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은 해고가 자유롭다”고 했다. B씨는 “근로기준법은 나를 전혀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저 참담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비영리 사단법인에 입사한 C씨는 구두로 해고 통보를 받은 뒤 해고통지서를 서면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상임이사는 “우리는 그렇게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C씨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이렇게 사각지대에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해고된 D씨는 2019년 회사의 보조금 유용 지시를 거부한 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 신고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점을 확인한 뒤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신고를 취하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D씨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가해자가 휘두르는 칼에 수없이 찔려도 구제를 받을 수도 없다”며 울먹였다.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거 없는 차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노동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희망 고문’을 이어가는 사이, 오늘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데 보호받을 수 있을지’를 묻는 안타까운 상담이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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