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51% 주가 상승의 배경 ‘HBM’
[비즈니스 포커스]
‘51.0%.’ SK하이닉스 주가의 연초 대비(6월 28일 기준) 상승률이다. 특히 5월 들어 8만~9만원대의 박스권을 벗어난 주가는 6월 13일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며 11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아직 바닥이 멀었다’던 SK하이닉스 주가가 고공 행진한 이유는 HBM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엔비디아 실적 발표 그 후
5월 25일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인 엔비디아가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올해 1분기 월가 전망치인 65억2000만 달러를 훌쩍 넘어선 71억9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는 2분기 매출이 1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예상치(71억5000달러)를 50% 이상 웃돈 수치였다.
실적 개선은 인공지능(AI)으로 설명할수 있다. 연초 챗GPT의 성능이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AI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대로 커진 때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 중”이라며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공급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GPU 전문 제조업체로,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개발에 최적화된 칩을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크게 뛰었다.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 다음 날 삼성전자는 장중 7만원까지 올랐고 SK하이닉스도 10개월 만에 10만원 선을 회복했다. 지난해 말 7만5000원으로 신저가를 기록한 뒤 10만원대에 진입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를 쓸어 담았다. 이날 외국인 투자자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각각 2665억원, 76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삼성전자보다 SK하이닉스에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더 쏠렸다.
“HBM에 대한 SK하이닉스의 높은 경쟁력에 주목한다.”(한동희 SK증권 애널리스트)
“HBM은 일반 D램 제품 대비 가격 프리미엄이 월등히 높다.”(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가장 높은 스펙의 HBM3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앞서 있다.”(정민규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그 배경으로 고성능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 High Bandwidth Memory)에 주목했다. HBM은 차세대 D램으로 주목받는 제품으로,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AI 서비스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고용량 D램이 필수다. 당연히 HBM의 왕좌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SK하이닉스였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등 3개사의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은 각각 50%, 40%, 10% 수준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SK하이닉스가 점유율을 높이는 가운데 삼성전자(38%)와 마이크론(9%)의 점유율이 소폭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SK하이닉스는 이 제품의 최초 개발사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고속 D램인 HBM은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 순으로 개발돼 왔다. HBM3는 HBM 4세대 제품으로, 초당 데이터 처리 속도가 819GB(기가바이트)에 달해 초고속 AI 반도체 시장에서 최적의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2E와 HBM3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HBM3를 양산해 엔비디아에 납품했다. 챗GPT 등 생성 AI 시장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엔비디아가 뜨자 SK하이닉스가 뛰는 이유다. 당시만 해도 주가는 반응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6월 9일 엔비디아에 ‘HBM3’ D램을 공급하며 양산에 나섰다고 발표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하락세를 걸었다. 지난해 전례 없는 반도체 불황에 하반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10만원대에서 9만원대로 주가는 주저앉았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 이후 AI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SK하이닉스의 HBM도 주목받았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최대 GPU 업체의 거의 유일한 HBM3 공급 업체”라고 말했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작년에도 SK하이닉스가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보이며 HBM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엔비디아 실적 발표 이후 AI 서버 등 하이엔드 제품 수요가 견조함이 확인되면서 SK하이닉스 쪽으로 관심이 집중됐다”고 말했다.
하반기 삼성전자의 추격
하반기 경쟁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지나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HBM의 기술 전쟁도 본격화된다.
우선 SK하이닉스는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D램 단품 칩 12개를 수직 적층해 현존 최고 용량인 24GB HBM 신제품을 개발, 하반기부터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HBM3를 양산한 데 이어 기존 대비 용량을 50% 높인 24GB 패키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며 “최근 AI 챗봇 산업이 확대되면서 늘어나고 있는 프리미엄 메모리 수요에 맞춰 하반기부터 시장에 신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다수의 글로벌 고객사에 HBM3 24GB 샘플을 제공해 성능 검증을 진행 중이고 고객들 역시 이 제품에 큰 기대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후속 제품 개발에도 빠르게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HBM3 다음 세대 모델인 HBM3E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6월 15일 열린 SK그룹 확대경영회의에 참석해 “AI 시장 확대로 HBM 수요가 높아지면서 올 하반기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추격에 나선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의 HBM3와 동일 수준의 스펙을 가진 HBM3를 올해 4분기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 HBM3 공급을 시작하면서 AI 서버용 메모리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삼성전자 전체 D램 매출에서 HBM3가 차지하는 매출 비율이 올해 6%에서 내년 18%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여 하반기 큰 폭의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도 최근 임직원 소통 채널인 ‘위톡’에서 “AI 시대가 도래하면 폭발적으로 데이터 양이 증가해 AI의 성능과 효율을 높여주는 반도체의 중요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삼성이 개발하고 있는 HBM이 당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양 사의 기술 전쟁은 K-반도체의 미래에도 긍정적이다. 아직까지 HBM이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다. 하지만 챗GPT에 쓰이는 엔비디아 GPU 등에 탑재되면서 메모리 불황의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HBM 수요는 2억9000만 GB로 작년보다 60% 가까이 증가하고 내년에는 30% 더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트렌드포스는 “현재 HBM 수요가 증가하는 원동력은 엔비디아 GPU를 탑재한 AI 서버와 자체 주문형 반도체(ASIC)를 개발 중인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대형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이라고 설명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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