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업 규정 최대 수혜자’ 아쿠나, ML 새 역사 쓸 수 있을까[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바뀐 규정이 이렇게 고마운 선수가 또 있을까. 아쿠나가 새 역사에 도전하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올시즌에 앞서 '스피드 업'을 위한 규정을 몇 가지 마련했다. 야구 인기 하락에 골머리를 앓던 사무국이 선수노조와 의견을 맞췄다. 피치 클락의 도입, 수비 시프트의 제한, 견제 제한 등이 올시즌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이는 미리 이미 도입된 승부치기 규정과 맞물려 확실한 경기 시간 단축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 규정들은 또 하나의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바로 도루의 증가다. 올시즌 메이저리그에서는 전반기가 채 끝나지도 않은 현재 벌써 1,800개 이상의 도루가 기록됐다. 2021시즌 총 도루 수가 2,213개, 지난해 총 2,486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시즌 도루 페이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빛나는 선수가 있다. 바로 올시즌 내셔널리그의 가장 강력한 MVP 후보로 손꼽히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리드오프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다.
아쿠나는 7월 4일(한국시간)까지 팀이 치른 84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그리고 .335/.413/.599 21홈런 40도루를 기록했다. 아쿠나는 내셔널리그 타율 2위, 출루율 4위, 장타율 1위, OPS 1위, 홈런 6위, 그리고 도루 1위다. 다른 수치들도 충분히 대단하다. 커리어하이 페이스로 달려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도루 페이스다. 아쿠나는 시즌 반환점을 막 돈 84경기 시점에 이미 40도루 고지를 밟았다. 2019년 풀타임을 소화하며 기록한 자신의 한 시즌 최다도루 기록(37개)을 전반기를 마치기 전에 이미 넘어섰다.
물론 현재 40도루 고지에 오른 선수가 아쿠나 뿐인 것은 아니다. 아메리칸리그 도루 1위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선두인 에스테우리 루이즈(OAK)는 42차례나 베이스를 훔쳤다. 하지만 83경기에서 .258/.312/.331 1홈런 33타점 42도루를 기록한 루이즈는 사실상 '도루 원 툴'인 선수. 2010년대 중반 '대도'로 이름을 날린 디 고든, 빌리 해밀턴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다. 하지만 아쿠나는 아니다. 뛰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인 선수가 아니다. 이미 40홈런 고지를 밟은 경험이 있는 거포다.
아쿠나는 이미 메이저리그 최초 기록을 썼다. 4일 40도루 고지에 오르며 시즌 첫 84경기에서 20홈런과 4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됐다. 수많은 특급 스타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아쿠나가 올시즌 해냈다. 이미 40도루 고지를 밟은 아쿠나는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단 4명 뿐인 40-40 클럽 가입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쿠나는 전인미답의 고지에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호타준족'이 넘쳐나는 메이저리그지만 40-40 클럽 가입자가 단 4명 뿐이라는 사실이 증명하듯 최상위권의 장타력과 최상위권의 주루 능력을 동시에 갖추기란 쉽지 않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50도루와 30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선수는 단 2명 밖에 없었다. 37홈런 50도루를 기록한 1987년의 에릭 데이비스, 33홈런 52도루를 기록한 1990년의 배리 본즈다. 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30홈런과 60도루를 동시에 기록한 적은 없었다.
이미 40도루 고지를 밟은 아쿠나는 부상이 없다면 50도루 고지도 무난히 밟을 전망이다. 아직 70경기 이상을 남겨둔 만큼 60도루 고지를 밟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홈런 역시 40홈런 고지를 밟지 못하더라도 30홈런 고지는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아쿠나는 올시즌 누구도 해내지 못한 30홈런-60도루 동시 달성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후반기에도 홈런과 도루 페이스가 유지된다면 역대 최초의 40-70은 물론 40-80도 노려볼 수 있다. 40-80을 동시에 달성한다면 오타니 쇼헤이(LAA)의 투타 겸업 만큼이나 엄청난 역사가 될 수 있다. 메이저리그를 지배한 전설들도 해내지 못한, 그야말로 또 하나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기록이 될 수 있다.
사실 아쿠나는 2021시즌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한 뒤 주력이 예전에 비해 떨어졌다. 여전히 리그 평균 이상의 빠른 발을 가진 선수인 것은 맞지만 더는 리그 최정상급의 주력이 아니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2018년 데뷔한 아쿠나는 2018-2021시즌 4년 연속 리그 상위 4% 이내의 스프린트스피드를 기록했지만 수술 복귀 후 발이 느려졌다.
부상 이전 초속 29피트를 가볍게 넘기던 스프린트 스피드는 지난해 초속 28.5피트로 떨어졌고 올해는 초속 27.9피트로 더 낮아졌다. 올시즌 아쿠나의 스프린트 스피드는 상위 32% 수준에 불과하다. 도루 전체 1위인 루이즈의 초속 29.8피트 속도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빅리그 3년 내내 초속 28.4-28.5피트의 스프린트 스피드를 유지하고 있는 김하성(SD)보다도 확실히 느린 주력이다. 아쿠나는 지난해(11개)에 이어 올해(7개)도 내셔널리그 도루자 1위를 기록 중이다.
이를 감안하면 올시즌 아쿠나의 도루 급증은 아쿠나의 '압도적인 능력의 발전'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피치 클락의 도입과 견제 횟수 제한으로 투수들이 예전처럼 주자를 묶어두기 어려워진 가운데 누구보다 많은 도루를 시도하는 아쿠나가 많은 성공까지 이뤄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팀 타격 1위의 강타선이 뒤에 버티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피치 클락에 쫓기는 투수들이 '1위 타선'을 앞에 두고 주자를 크게 신경 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물론 규정 개정 전에도 37도루를 기록했을 정도로 기본적인 도루 능력을 갖춘 선수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메이저리그가 야심차게 도입한 '스피드 업' 규정의 최대 수혜자가 아쿠나라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과연 새 규정과 함께 '물 만난 고기'처럼 활기를 찾은 아쿠나가 이 페이스를 언제까지 이어갈지, 올시즌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충격적인 족적을 남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자료사진=로날드 아쿠나 주니어)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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