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기업 빠지고 우리끼리 ‘강제동원 다툼’
3자 변제안 법적 논란 본격화
‘일본 기업 사죄’ 핵심 벗어나
샛길로 흐르는 과거사 문제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징용) 해법 발표 4개월 만에 공탁 절차를 강행하면서 ‘제3자 변제안’을 둘러싼 법적 논란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가해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과거사 문제가 한국 정부와 피해자 간 국내 분쟁으로 치환된 것이다. 일본 가해 기업은 쏙 빠진 채 본질이 왜곡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광주지법 공탁관은 전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신해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씨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낸 공탁 신청을 ‘불수리’ 결정했다. 양씨가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 서류상으로 증명됐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에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즉시 이의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피해자나 유족 측도 양씨와 함께 거부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추가로 공탁 ‘불수리’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지난 3일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지 않는 피해자 4명의 배상금에 대한 공탁 절차에 들어갔다. 재단이 공탁을 진행하면서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본 피고 기업들은 확정 판결된 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됐다. 이 때문에 공탁 절차를 계기로 제3자 변제안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측은 “공탁을 해도 채권이 자동 소멸하는 게 아니라 공탁금을 받아야 (소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피해자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발하고 있다. 최봉태 변호사는 통화에서 “변제공탁으로 채무는 소멸된다”면서 “채권이 자동소멸되는 게 아니라는 외교부의 설명은 전혀 맞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강제집행에 대한 의지를 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단이 일본 기업들과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일부는 일본 피고 기업의 직접 배상을 요구하며 제3자 변제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판례에 따라 배상하지 않고 버티는 채무자 때문에 자신까지 법적 문제가 생기게 됐다면 빚을 대신 갚을 수 있다. 그러나 재단을 강제집행을 당할 위험성이 있는 제3자로 볼 수 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최 변호사는 재단의 배임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대신 배상하면서 발생한 일본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배임에 해당한다”며 “정부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 법원에서 재단의 공탁 신청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피해자 측은 공탁 무효 확인 소송을 하거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집행 사건에 공탁서를 제출해 재판 과정에서 공탁의 유·무효를 법률적으로 다툴 방침이다. 일본 가해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과거사 문제는 한국 정부와 피해자 간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셈이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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