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행사 격상 '인천상륙작전'…여전히 고통받는 원주민들"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2023. 7. 5.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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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 희생자 초청 토론회' 열려
구국의 작전? 민간인 무차별 학살?
전쟁으로 빼앗긴 가족과 집…국가는 없었다.
가족·고향 잃고 68년 만에 받은 보상금 월 25만원
"전쟁 희생자 외면받는 현실에 절망…억울한 원주민의 한"
인천상륙작전 중 상륙정이 인원과 장비를 인천 해안에 내리는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월미도 미군포격 희생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생색내듯 헌화 행사를 하는 게 아닌 진실화해위의 권고조치를 이행하고 민간인 학살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 사과, 그에 따른 배상 그리고 귀향 대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4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월미도 미군폭격 민간인 희생, 아직 우리가 함께 할 이야기들'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구국의 작전? 민간인 무차별 학살?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강변구 작가와 박원일 전 인천중·동평화복지연대 사무국장은 "월미도 민간인 폭격에 대해 우리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전쟁 시 민간인 보호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과 같다"고 입을 모았다. 강변구 작가는 2017년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을 다룬 기록서 '그 섬이 들려준 평화 이야기'의 저자이고, 박원일 전 사무국장은 월미도가 속한 인천 중구와 동구에서 오랫동안 평화 관련 시민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 토론회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구국의 작전'으로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져 외면 받고 있는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에 대하 진실을 알려 정부와 지자체가 이에 대한 정당한 조치를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국제행사로 격상할 예정인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은 1950년 9월 10일 인천상륙작전을 닷새 앞둔 연합군이 월미도 어촌마을을 무차별 폭격해 원주민 수백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때 상당수가 숨졌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란을 나왔다가 아직까지 귀향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발제와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 성패 조건을 인천항에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상륙시키는 것과 상륙 시 월미도가 인천항을 공격하는 기지로 쓰이는 것을 막는 것 등 2가지로 판단했다. 월미도는 섬 정상에서 인천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데다 인천 앞바다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육로와 해로를 이어주는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인민군이 월미도에 얼마나 강한 진지를 구축해 놓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연합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기 전 사전작전으로 '월미도 초토화 작전'을 강행했다,

1950년 9월 10일 오전 7시부터 다섯 시간 동안 연합군은 항공기들은 월미도에 네이팜탄(살상력이 큰 네이팜 연료의 화염 무기로 필요 이상의 살상을 한다는 점과 조합에 사용된 물질이 자연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문제 등으로 현재는 비인도적인 무기로서 사용이 금지됐다) 95개를 투하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향해 기관총과 로켓포 등으로 난사했다.

당시 월미도 어촌마을에는 약 120가구 600여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대부분이 포격으로 숨졌으며, 일부 생존자들은 맨몸으로 헤엄쳐 피란했다.

4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세미나실에서 '월미도미군폭격 민간인 희생, 아직 우리가 함께 할 이야기들'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모습.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회 제공

전쟁으로 빼앗긴 가족과 집…국가는 없었다


이후 월미도의 유족과 피란민들은 월미도로 돌아가지 못했다. 폭격 이후부터 1971년까지 월미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민간인 출입이 불가했다. 미군 철수 직후 2000년까지 우리 해군이 이곳에 주둔했고, 2001년 국방부가 이 땅을 인천시에 매각했다. 인천시는 이곳에 시민공원을 조성했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1951년부터 귀향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우리 정부와 지자체에 수차례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고향 땅 찾기 운동을 벌였지만 여전히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민간인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미군과 우리 해군의 주둔, 인천시의 시민공원 조성으로 집과 땅도 잃었다며 우리 정부와 인천시 등을 상대로 귀향과 소유권 복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은 인천상륙작전이 끝난 지 58년 만인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가 이뤄지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해당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 또는 공동책임을 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위령사업 등 희생자들에 대한 상징적 화해조치를 할 것 △월미도 원주민의 귀향을 지원하거나 이에 부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할 것 등 3가지 권고조치를 내렸다.

또 법·제도적으로 월미도 희생자들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 오기되거나 누락된 공식기록을 복원하고, 월미도 민간인 폭격사건에 대한 역사기록물 등재, 전시상황에서도 민간인 보호가 실효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에 동참할 것, 국제법 정신 함양을 위해 군대와 학교교육에 이 사건을 교육할 것 등의 조치도 강력 권고했다. 그러나 대부분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귀향 지원에 대해서는 국방부는 소유권이 인천시에 있다고 미루고, 인천시는 원주민들에게 이 땅을 공급할 법적근거가 없다며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시민공원이 조성된 땅을 되돌려줄 수 없던 상황에서 2006년과 2012년, 2017년 각각 월미도 원주민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모두 제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정부 보상이 이뤄지지 않자 지자체인 인천시가 월미도 원주민들의 피해를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하려 했지만 '인천상륙작전 피해 원주민에 대한 보상과 지원은 자치단체 업무가 아닌 국가 업무'라는 이유로 무산됐다. 현재 원주민들은 월미공원 끝자락 약 2300평 부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가족·고향 잃고 68년 만에 받은 보상금 월 25만원

인천상륙작전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연합뉴스

지난해부터 인천시는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국제행사로 격상·확대하기로 했다. '구국의 작전'으로 평가받는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미에 걸맞는 기념사업이 필요하다는 문제 인식에서다.

인천상륙작전은 한·미·영 등 8개국 261척의 함정이 투입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상륙작전으로 기록됐다. 당시 연합군은 북한군의 측면을 공격해 90일 만에 서울을 수복하는 등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엎었다.

인천시는 인천상륙작전 75주년이 되는 2025년에는 작전 참가 8개국 정상과 참전용사들이 참여하는 국제행사로 개최할 계획이다. 또 이를 더욱 확대해 장기적으로는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가 풍성한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인천연구원에 인천상륙작전 기념사업의 세계화를 위한 중·장기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획과제를 예산 6천만원을 들여 발주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국제행사로 격상하는 동안 이 작전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월미도 원주민 23명이 받은 지원은 2020년부터 '인천시 과거사 피해주민 귀향지원을 위한 생활안정지원 조례'를 통해 받는 월 25만원과 2021년 월미공원에 세워진 희생자 위령비, 지난해부터 인천시의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 때 '월미도 폭격 희생자' 이름으로 불려 나간다는 게 전부다.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나 지원은 아직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월 25만원의 지원금도 폭격 피해 보상이 아닌 '노인 복지'의 성격으로 제정된 조례를 통해 받는데, 이마저도 귀향을 요구한 지 68년 만에 받는 것이다.

"전쟁 희생자 외면받는 현실에 절망…억울한 원주민의 한"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강변구 작가는 "전쟁에서 승전을 올린 국가만이 아니라 목숨을 잃고 집과 재산을 빼앗긴 민간인들까지 함께 기억할 때 전쟁의 참모습을 알고 미래의 평화를 지향할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월미도 귀향은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이 입은 피해를 보상을 통해 회복시켜줘야 할 국가의 책임이고, 지자체의 실행 의무"라고 말했다.

한인덕(80·여)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장은 "인천상륙작전을 칭송하면서 폭격으로 고향을 잃은 우리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현실이 절망스럽다"며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후회도 많았지만 월미도 원주민들의 억울한 한이 풀릴 때까지 이 일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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