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어진 관계를 바로잡고 싶을 때 [이.단.아]

진달래 2023. 7. 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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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관계에서 결핍은 가끔 신뢰보다도 더 끈끈한 아교가 되지만, 반대로 그 관계는 작은 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반대로 연지는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좋은 물건을 자주 나누는 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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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온유 '회생'(자음과모음 2023 여름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흔히 말하는 연애에 관한 속설 하나. '한 번 헤어진 연인은 다시 만나도 같은 이유로 헤어진다.' 귀납적으로 추론하면 진실이라 할 수 없지만 나름의 논리는 있다. 자신의 결핍을 상대와의 관계에서 채우려다가 갈등이 생긴 경우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 개인 내면의 문제를 외부에서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

꼭 연인만의 얘기는 아니다. 관계에서 결핍은 가끔 신뢰보다도 더 끈끈한 아교가 되지만, 반대로 그 관계는 작은 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2023 여름호)에 실린 백온유의 '회생'은 그런 관계를 돌아볼 시간을 선사한다. 소설은 한편으론 순간 잘못 쌓은 돌 하나를 어찌 옮길 줄 몰라 애타는, 심상한 세월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수영은 대학 동기 연지를 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이 지났지만 괜찮다. 그저 연지가 집들이 선물인 고가의 접시 세트를 받으면, 자신이 무리했다는 걸 알고 잠깐이나마 고마워하리라고 기대하며 기다릴 뿐이다. 수영은 언제부턴가 연지에게 무작정 선물을 하고 "연지의 눈동자에 비쳤다가 순식간에 휘발되는 그 감정(고마움)"에 집착하고 있다. 일방적인 듯한 이 관계는 수영의 거짓말이 탄로 나면서 시작됐다.

졸업 후 둘은 같은 동네 주민들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나눔방'을 통해 우연히 재회했다. 당시 각자의 상황은 퍽 달랐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거의 포기한 상태로 집 보증금을 까먹으며 지내던 수영은 이웃들이 나눠주는 각종 식료품 등으로 연명했다. 반대로 연지는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좋은 물건을 자주 나누는 회원이었다. 어느 날, 연지가 올린 나눔 물품을 두고 수영이 다른 회원과 서로 양보를 요구하며 다툼을 벌인 게 발단이 돼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백온유 작가. 창비 제공

일이 꼬인 건 수영의 거짓 임신 때문이다. 나눔 물건을 양보하기 싫어서 한 거짓말을 연지가 철석같이 믿었다.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연지는 아이 아빠가 없다는 거짓말을 믿고 자신의 집에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수영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동거를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자신이 공허한 연지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연지가 "돈이든, 시간이든, 마음이든" 가진 걸 다 소진하면 "이 지루함"도 끝나지 않을까 바라며 과도하게 물건을 사는 쇼핑 중독 상태라는 걸 알게 되면서다. 뻔하게도 수개월의 동거는 수영의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처참히 끝난다.

이후 수영은 관계 회복에 애를 쓴다. 특히 연지에게 자신이 번듯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이날의 만남도 그런 이유로 성사됐다. 하지만 40분 만에 나온 연지는 금방 자리를 뜬다. 들고 가던 수영의 선물 상자가 찢어진 쇼핑백 사이로 떨어지자 그대로 거리에 두고서.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상대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속에서 '회생'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손을 놓았을 때 오히려 가닿는 것이 있듯이 말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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