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삼촌’ 현기영의 귀환…“4·3원혼에 이 책을 바칩니다”
14년 만의 신작…4년 간 집필
“꿈속 4·3영령이 명령해 쓴 작품”
생존자 관점서 제주 비극 다뤄
제주 청년들의 항쟁과 로맨스
차기작은 나무에 대해 쓸 예정
이번 소설 역시 4·3사건을 다룬다. 현 작가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장편은 제주 4·3 영령들이 나를 추동해 쓴 작품”이라며 “제대로 써서 4·3의 원혼들에게 공물로 바치자, 그런 생각으로 썼다”고 말했다. 갈등과 혐오로 점철된 이 시대 우리에게 당도한 작품은, 4·3 역사가 우리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여든둘’에 발표한 4·3소설
그는 4·3이 일생의 화두가 된 것을 두고 “운명이었다”고 회고했다. “4·3의 영령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4·3에 대한 부채 의식을 갚았다는 생각을 갖고 이제는 다른 걸 써보자 했지만 그게 잘 안됐어요. 고문당하는 꿈을 두 번이나 꿨어요. 그런데 나를 고문하는 주체가 누구냐 하면 4·3 영령이에요. ‘네가 뭘 한 게 있느냐’고 말하는 듯했어요.”
새 소설은 제주의 해변 마을 조천리를 주요 공간으로, 1943년 4·3사건이 일어나고 토벌이 이뤄진 1948년 겨울까지를 다룬다. 꼬박 4년을 이 소설에 매달렸다고 했다. 작가는 그 과정을 “캄캄한 방 안의 코끼리를 더듬는, 암중모색의 4년”이었다고 표현했다. 현기영은 “그동안의 4·3 이야기는 주로 양민들의 수난에 국한됐다”면서 “이전과 달리 수난만이 아니라 항쟁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다”고 설명했다.
당시 11세 소년이었던 안창세가 노인이 되어 ‘살아남은 자’로서 회고담을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단, 사건을 이끌어가는 것은 ‘청년들’이다. 작가는 “4·3은 젊은이들이 주도한 사건이었다”면서 “해방공간에서 제주도 젊은이들이 가졌던 새 나라를 세우려는 열정을 탐구해 고스란히 소설에 넣었고, 그들의 로맨스도 넣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처참함만 있는 게 아니라 즐거움도 있고 낭만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세기 전의 이야기지만 그는 “이번 책은 역사소설이 아니다”며 ‘당대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문체도 과거의 것이 아니고, 내용으로도 4·3은 당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역사가 되지 못했죠. 3만명의 희생자가 있었다는 게 현재 역사에 올라와 있는 수준이죠. 제가 다룬 건 여전히 4·3의 일부일 뿐입니다.”
제목 ‘제주도우다’는 ‘제주도입니다’의 제주 방언이자, 제주도를 돕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38선이 그어지고 일본에서 귀향민이 들어올 때 ‘남과 북 중 어디로 가겠느냐’는 미군정의 물음에 제주인들이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고 말한 데서 따왔다. 소설 속 문장에도 등장한다.
그는 올 2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4·3사건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그야말로 역사 왜곡이고 지식 왜곡”이라며 “4·3사건은 무지막지한 탄압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했다.
현 작가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4·3 이야기는 그만 써야죠. 나무에 대한 글을 쓸 생각입니다. 도시에서 시멘트로 둘러싸여 회색 공간에 살다 보니 인간이 자연의 소산,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버리죠.”
독자들을 향한 바람도 남겼다. “독자들도 천천히 읽어줬으면 합니다. 요즘 세태가 무겁고 진지한 건 골 때린다 하고 가벼운 것을 향유합니다만, 진지한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도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좀 진지한 것도 사랑해야지 않는가 봅니다.”
김미경 (mid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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