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안 팔겠다” 90% 장악한 소재 틀어쥐고, 강펀치 날린 중국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2023. 7.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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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 방중 사흘 앞두고 반격
그래픽=양인성

중국이 반도체 핵심 소재를 틀어쥐고 미국을 향한 반격에 나섰다. 중국이 전 세계 생산을 장악하고 있는 갈륨·게르마늄 수출을 8월 1일부터 통제하겠다고 3일 밝힌 것이다.

외신들은 중국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訪中)을 사흘 앞두고 ‘협상의 지렛대’를 만들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지난 5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문을 앞두고도,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안보 심사’ 탈락이란 제재를 가하며 협상의 고삐를 죈 적이 있다. 미국이 동맹국인 일본(반도체 소재), 네덜란드(장비)와 연합해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조여가는 상황에서 역공에 나선 셈이다.

두 물질의 수출 통제는 당장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차세대 반도체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 데다 LED(발광다이오드), 태양광 패널 등에도 필수로 쓰이는 물질이라 국내 업계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중국에 협상 지렛대 될 것”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는 수출통제법, 대외무역법, 해관법 등의 규정에 입각해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에 대해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갈륨과 게르마늄은 중국이 각각 전 세계 생산의 94%, 90%를 차지하며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금속이다. 희귀 금속은 아니지만 중국이 장기간 저가(低價)에 수출하는 바람에 압도적 경쟁력을 갖게 됐다.

이 소재들은 첨단 반도체 제조를 비롯해 군사, 우주항공 등 각종 전략 사업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갈륨은 화합물 반도체, TV와 스마트폰 화면에 쓰이는 LED, 태양광 패널, 레이저 장비 등에 사용된다. 게르마늄도 반도체 제조와 광섬유 통신, 적외선 카메라 렌즈 등에 쓰이는 핵심 금속이다. 금속산업 리서치 기업인 CRU그룹은 두 금속 모두 대체가 가능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수입의 각각 53%와 5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제재는 미·중 반도체 전쟁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중국 환구시보는 “갈륨, 게르마늄 수출이 막히면 반도체 제조 원가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며 “이 두 광물에 대한 독점적 지위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가하는 압력에서 중국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은 수출 통제 관련 새로운 대화를 진행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내왔고, 이번 조치는 향후 논의에서 중국에 더 많은 지렛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보다는 미래, 한국보다 미국이 영향

이번 수출 통제가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당장 악재(惡材)가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당장 영향은 크지 않지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갈륨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주목받는 전력반도체의 차세대 소재로 꼽히는 금속이다. 갈륨과 질소의 화합물인 질화갈륨(GaN)은 기존 실리콘 대비 내구성이 좋고 고온에 강하다. 이미 삼성전자를 비롯해 TSMC, 글로벌파운드리, DB하이텍 등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은 질화갈륨 기반의 전력반도체 연구에 뛰어든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파운드리 포럼’에서 “2025년 8인치 웨이퍼 질화갈륨 전력반도체 파운드리 서비스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질화갈륨 연구에 나선 다른 국내 기업은 “3~4년 후 양산할 제품인 만큼 당장 영향은 없지만, 향후 수급이 어려워지면 수입선 다변화에 따른 비용 상승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번 중국의 수출 통제는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는 “전력반도체는 이제 초기 단계이고, 필요량이 많지 않아 당장 타격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군사, 우주항공 같은 분야에서 갈륨 등 화합물 반도체를 많이 쓰고 있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영향이 클 것”이라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은 반도체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분야를 겨누진 않았을 것”이라며 “갈륨이 태양광, 군사용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는 소재인 만큼 이해득실을 철저히 고려해 제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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