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냉전 후 최초로 ‘유럽 방위 전략’ 새로 짠다

류재민 기자 2023. 7.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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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호랑이’ 오명 씻기 시동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 군사위원회 롭 바우어 위원장이 기자 회견에 참석한 모습. /EPA 연합뉴스

올해로 창설 74주년을 맞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대대적인 전력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를 적국으로 상정해 유사시 병력 30만명을 신속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북극부터 남유럽에 이르는 지역을 아우르는 육·해·공 통합 방위 계획도 수립한다. 1990년대 동서 냉전 구도 해체 이후 몸집은 비대해졌지만 대응 태세는 느슨해졌다는 평가를 받아온 나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전열을 재정비하기로 한 것이다. 나토의 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서유럽 등 자유 진영과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의 신냉전 구도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롭 바워 나토 군사위원장은 3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방위 구상인 지역 계획(regional plans) 잠정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러시아 침공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회원 31국이 병력 30만명을 신속하게 집결시켜 30일 내에 러시아와 면한 동부 전선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나토는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나토 조약 5항을 강조하는 것 외에는 역내 긴급 사태 발생 시 구체적인 병력 동원 계획을 마련한 적이 없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현재 4만명인 신속 대응군 규모를 30만명으로 증원하겠다고 발표(지난해 6월)했고, 이번엔 긴급 사태 발생 30일 내 병력을 동원해 전선으로 보내겠다고 더 확실하게 못 박았다. 현재 신속 대응군은 에스토니아 북부에서 루마니아에 걸쳐 배치돼 있고, 군용 항공기 100여 대가 있다. 3일 발표한 계획이 실행될 경우 병력은 8배 이상으로 늘고 군수 장비와 첨단 무기들도 대거 투입된다. 현재 발트해와 지중해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군함(현재 27대)의 수도 새 계획에 따라 늘어날 전망이다. 새 전략 계획은 오는 11~12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승인될 예정이다.

나토의 대대적인 전략 재정비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1997년 나토와 러시아는 안보 협정을 맺고 적대 관계를 공식 청산했다. ‘데탕트(화해)의 시대’를 맞아 나토 회원국들은 모두 국방 예산을 삭감하고 군 규모를 줄여 왔다. ‘공공의 적’이 사라지자 참가국들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시작됐다. 참가국들이 ‘부담은 적게, 혜택은 많이’ 얻으려는 입장을 취하며 군 기강이 해이해졌고, 유명무실한 군대로 변해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며 안보 위기가 닥쳤음에도, 나토의 대응은 큰 변화가 없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1개 대대(300~1000명) 규모 병력을 추가했고,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인접해 있는 폴란드도 2개 대대만 추가하는 데 그쳤다. 외신들은 “냉전 구도 해체 후 계속된 군축(軍縮)으로 ‘종이호랑이’라는 오명을 얻은 나토가 더 강한 군대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교적 취약했던 북극 인근 지역 방어력을 보강해 러시아를 북쪽에서 감시하고 봉쇄할 수 있는 전략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가 이미 군함·핵잠수함 등 군사력을 북극 부근에 집중적으로 배치해둔 데 비해 나토는 지금껏 안이하게 대응해왔다.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 북부 함대에는 잠수함 27척, 군함 40여 척, 전투기 80여 대, 핵탄두 및 미사일 등이 배치돼 있다. 로이터는 “이 지역 서방 세력의 군대에 비해 군사적으로 약 10년 앞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나토는 북극 지역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지난 4월 나토 회원국이 된 핀란드와 가입을 추진 중인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쯤 스웨덴과 핀란드를 오가는 철로를 개통한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약 1340 길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러시아 국경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케미야르비를 종착점으로 한 이 열차는 러시아와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동맹국들이 증원군과 장비를 더 쉽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속적으로 나토 가입을 시도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현재 4대인 최신형 잠수함을 2028년 12대까지 늘린다. 최신형 고틀란드급 잠수함과 독일의 212급 잠수함으로 발트해 연안에서 러시아 해상 병력을 탐지, 봉쇄하려는 계획이다. 노르웨이 또한 4대의 잠수함을 추가로 배치해 북극해의 군사력을 보강한다.

핀란드는 지난 5월 나토 회원국으로서 처음으로 러시아 국경에서 차로 불과 두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북부 로바야르비 포병 훈련장에서 미국·영국·노르웨이·스웨덴 등과 함께 북극 군사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미 육군 야전 포병 장교인 커트 로시 대위는 로이터에 “이렇게 러시아와 가까운 곳에서 훈련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산타클로스 마을’로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핀란드 로바니에미 인근 마을은 나토가 활용할 수 있는 북극 공군 기지로 탈바꿈한다. 유사시 이 지역에 군사적 허브 역할을 맡기기 위해 핀란드는 1억5000만유로(약 2140억원)를 투자해 기지를 재정비하고 있다. 2026년부터 핀란드군에 추가될 64기의 F-35 전투기 중 절반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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