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 알 수 없는 표정의 묘한 매력…팝아트로 재탄생한 ‘비너스’
- 기존 예술 틀 깨고 ‘뉴 아트’ 개척
- 전시장 벽엔 즉흥 스프레이 그림
- 간결한 선 활용한 정물화도 선봬
검은 눈과 일 자로 다문 입, 하얀 피부에 짙은 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그녀의 이름은 ‘비너스(Venus)’. 화면 밖 감상자와 눈맞춤이라도 하려는 듯 바짝 다가와 정면을 응시한다. 부드러운 눈빛과 미소와 육감적인 몸으로 그려지는 고전 속 비너스와는 먼 모습이지만, 알 수 없는 표정 속 천진함과 묘한 매력이 마주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사랑받는 일본 팝아트 작가 아마노 타케루(Amano Takeru)가 부산을 찾았다.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대중에 많이 소개됐지만, 공식적인 국내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 새롭게 출발하는 OKNP(옛 가나부산, 해운대구)의 첫 해외작가 전시로 낙점됐다. 서울 신세계갤러리 강남점과 동시에 선보이는 전시 ‘아마노 타케루’에서는 모두 54점의 신작을 공개한다.
부산 전시장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비너스’ 시리즈를 포함해 정물·자연 시리즈 등 30여 점이 걸렸다. 가장 널리 알려진 비너스 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그린 작품과 종이 위에 그래피티처럼 스프레이로 그린 작품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비너스처럼 간결한 선을 활용해 강아지나 레몬 등 동물과 사물을 화면에 옮긴 정물화도 전시됐다. 거친 붓질로 마감된 풍경화는 그의 숙련된 필력을 보여준다.
이 전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스프레이 작업이다. 지난달 22일 전시 오프닝에서 작가가 직접 전시장 벽에 그린 ‘비너스’로, 오프닝 전날 즉흥으로 갤러리 측과 결정한 퍼포먼스였다. 유쾌하고 파격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아쉽게도 전시가 끝나면 다시 흰 페인트로 덮인다고 한다.
산뜻한 색감과 간결한 선이 특징인 그의 그림은 일본 만화 ‘망가’를 떠올리게 한다. 미술사 관점에서 보자면 ‘팝아트’(Pop Art)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전의 팝아트가 마릴린 먼로와 같이 대중의 아이콘을 모티브로 삼은 것과 달리, 작가는 모던한 여성 캐릭터로 고전 속 인물을 대체하고 섞는 등 개개인의 환상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OKNP 측은 “동시대 예술이 ‘창조’가 아닌 ‘인용과 재인용’로 바뀌었다는 점, 나아가 ‘거대한 이야기’에서 ‘작은 이야기들’로 주제가 이행되었음을 느낀다면 아마노 타케루의 미학을 이해할 수 있다”며 “과거의 팝아트가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고급문화에 편입되고 갈 길을 잃은 것과 달리, 작가는 그의 기반을 명확히 이해하고 젊은 세대 개개인의 취향과 환상을 지표 삼아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간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작품세계는 작가가 유년기 경험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브컬처 문화와 미국 유학 시절 습득한 다양한 문화가 바탕이 됐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전시장이 아닌 색다른 공간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는데, 이렇게 기존 예술계의 엄격한 룰을 교란하는 그의 활동은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활동을 통틀어 사람들은 ‘뉴 아트(NEW ART)’라고 한다.
최근 아마노 타케루 작가는 회화 외에도 거대한 조각을 비롯해 아트 토이, 에어-스프레이 작업, 그리고 NFT까지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고 있다. 또한 디자이너로서 활동도 겸하는데, 유명 아티스트의 CD나 LP의 재킷을 만들기도 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와 협업하는 등 자기 아이덴티티를 활용한 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아마노 타케루에 관한 정보 하나 더. 그는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아마노 요시타카의 아들이다. 아마노 요시타카는 ‘독수리 5형제’ ‘타임보칸’ ‘파이널 판타지’ 등의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했다. 전시는 오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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