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21] 투표권이 없는 ‘요람’을 지켜라
“아기가 죽었다. 장난감 더미 위에 부유하듯 널브러진 아기를 회색 커버 안에 누이고 뼈마디가 비틀어진 몸 위로 지퍼를 채웠다. 여자아이는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아직 살아 있었다. 그 아이는 사나운 짐승처럼 맞서 싸웠다. 싸움의 흔적들. 아이의 말랑한 손톱 아래 박힌 살점들이 발견되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아이는 몸부림쳤고 경련으로 꿈틀거렸다. 두 눈을 부릅뜬 모습이 애타게 공기를 찾는 것 같았다. 목구멍에는 피가 가득했다.”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 중에서
아기 시신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어떻게 살았을까.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꽁꽁 얼어붙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했을 텐데, 어떻게 재료를 꺼내 요리하고 밥을 먹었을까. 보건복지부 감사 과정에서 부모 손에 살해되어 냉동 칸에 보관된 두 아기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지난해까지 8년간, 출생신고 되지 않은 아기는 2000명이 넘는다.
태어나고 2년 넘게 나 또한 세상에 없는 아이였다. 예전에는 본적지에서 출생신고를 했는데 지방에 계신 조부가 출생신고를 미룬 탓이었다. 힘들게 서울살이하던 부모님이 평일에 내려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당시엔 일찍 죽는 아기가 많아서 늦은 신고가 드물지 않았다.
소설은 살해된 두 아이의 죽음을 묘사하는 데서 시작한다. 보모 루이즈는 불행한 삶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돌보던 아이들을 제물 삼아 자살을 시도했다. 루이즈에게 맡기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며 폴과 미리엄 부부는 울부짖는다. 아기를 낳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미리엄도 ‘얘들이 날 산 채로 잡아먹는구나’라며 산후 후유증과 양육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다.
출신 지역을 알지 못하도록 2008년에 호적법이 폐지되면서 태어난 지역에서 출생신고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신고하지 않아도 과태료 5만원, 영아를 살해하고 유기해도 법은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인구 절벽, 국가 소멸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출생신고 관련법이 바뀐다. 특정 집단에게 이익을 주고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태원참사특별법, 노란봉투법 등과 달리 투표권이 없는 ‘요람’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충분한 검토와 꾸준한 관찰, 세심한 보완이 지속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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