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45] 제주 잔치음식 괴기반
제주 비양도에서 큰 잔치가 열렸다. 이름하여 ‘잠수복 벗고 면사포’라는 섬마을 잔치였다. 해녀 10명이 면사포를 쓰고 사진을 찍고 축하 잔치를 하는 내용이었다. 시작은 80세 현역 해녀 할망의 “우리 때는 드레스가 없어. 비양도에는 결혼식장도 없잖아. 마당에 보릿대 깔고 병풍 치고 결혼했어. 그래서 드레스를 못 입었어. 결혼식 사진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 영감이 있으면 드레스 한번 입고 같이 결혼 사진 찍고 싶어”라는 이야기였다.
비양도에는 해녀 40여 명이 살고 있다. 이 중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은 20여 명쯤 된다. 해녀가 섬 인구의 30%에 이르는 ‘해녀의 섬’이다. 섬은 작고 고구마를 심어 식량을 할 땅도 손바닥만 하지만 바다밭은 넓었다. 그래서 생계를 오롯이 물질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는 갓물질(해안가에서 하는 물질)로, 상군이 되어서는 뱃물질(배를 타고 나가서 하는 물질)로 더 많은 소라를 줍고 미역을 뜯어야 했다. 그래서 면사포는 고사하고 제대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해녀 할망이 툭 던진 말이 잔잔하게 뭍으로 퍼져 나갔다. 부산에서 광주에서 강화에서 신안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춤을 추었다. 면사포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회사도 있었다. 그리고 농사꾼은 쌀을, 소금 장인은 천일염을, 손재주가 좋은 분은 한과를 만들어 보내왔다. 이들에게 제주 음식 연구가 양용진 세프가 몸국, 잡채, 문어무침 그리고 괴기반 등 제주 잔치 음식을 차려냈다. 모두 해녀 음식이지만 할망들도 잊고 있었던 음식들이다. 몸국은 제주 참몸(모자반)에 돼지고기 육수로 준비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몸국과 함께 나온 ‘괴기반’이었다. 괴기반은 두부 한 점, 수애(순대) 한 점 그리고 수육 세 점이 담긴 음식을 말한다. 수애는 긴 잔치에 상하지 않도록 채소는 빼고 메밀가루와 선지를 넣어 떡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몸국과 곁들여 먹었다. 괴기반은 1인용 상에 해당한다. 양반이든 상놈이든, 남자든 여자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똑같은 상을 받는다. 제주 음식에 깃든 평등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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