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조각한 ‘우주’
[지금 이 명화] [6] 문신 ‘무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을 손꼽으라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소마미술관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43만평의 드넓은 잠실 올림픽 공원 안에 푹 싸인 미술관으로 몸과 마음 모두에 힐링을 주는 곳이다. 공원 속 세계적 미술관 하면 전문가들은 영국 하이드파크 공원에 있는 서핀타인 미술관을 자주 언급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시장 규모나 예술적 문맥에서 소마미술관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소마미술관은 2004년 개관했지만 그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 정부는 올림픽을 스포츠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적으로도 성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세계적인 조각가를 초청하여 올림픽 공원 안에 조각 작품을 세우게 했다. 이 때문에 200여 점의 야외 조각이 소마미술관을 에워싸고 있다.
이 중 가장 우리의 눈을 끄는 조각이 있다면 바로 조각가 문신의 ‘올림픽-1988′이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원구를 양쪽에 엇갈려 쌓아 올린 작품으로 높이는 24m, 건물로 치면 8층 높이다. 멀리서 보면 하늘로 승천하는 두 마리 용처럼 웅비하는 모습이 일품이다. 위치도 소마미술관 옆에 있어 항상 소마미술관으로 향하는 우리의 눈길을 잡아당긴다.
지금 소마미술관에는 문신의 작품세계를 세밀히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에 그의 조각과 드로잉 작품이 여러점 출품되었다. 이 중 ‘무제(1968)’의 경우 나무 조각이지만 ‘올림픽-1988′과 같은 원리를 먼저 보여준다. 1968년 작품에서는 원구의 수평 배열이 인상적이지만, 1988년에는 그것이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다. 공통적이라면 두 작품 모두 원과 반구의 교차를 통해 리듬감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흥미로운 점이라면 미국이 1960년대 아폴로 계획을 세워 우주에 도전하면서, 여기에 발맞춰 우주적 미감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국내 작가들뿐만 아니라 1961년부터 프랑스로 건너가 활동하던 문신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무제(1968)’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원구는 우주의 원형이고, 그것의 대칭적 배열은 생명의 근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원구로 시작한 그의 우주에 대한 탐구가 ‘개미(1973)’나 ‘우주를 향하여3(1989)’처럼 미지의 생명체 같은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 물론 압권은 공원 안에 세워져 있는 ‘올림픽-1988′으로, 여기서 그가 창작의 원리로 가장 중요시하는 대칭성이 극대화된다. 이렇게 문신의 예술가로서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88년 올림픽 기념 조각상을 그것의 출발점이 되는 초기의 실험작들과 다 함께 볼 수 있어 이번 전시가 더 뜻 깊게 다가온다.
[작품 보려면…]
▲서울 소마미술관 8월 27일까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학생 9000원
▲문의: (02)724-6017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