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랑 재밌게 놀자”는 말에 다시 불붙은 오빠

용인=임보미 기자 2023. 7. 5. 0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친정 KCC 코치로 코트 돌아온 이상민
감독때 너무 힘들어 복귀 생각 안해… 전창진 감독 편한 전화가 기름 부어
후배들 대부분 “코치로 갈 리가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고싶어 결정
16년 만에 친정 팀 KCC로 돌아온 이상민 코치가 3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구단 체육관에서 새로 받은 코칭스태프 유니폼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삼성에서 코치로 2년, 감독으로 8년을 지내는 동안 우승 트로피를 품어보지 못한 그는 친정 팀에서 지도자로 첫 우승을 꿈꾸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상민이 그 이상민 맞아요?”

프로농구 KCC 구단이 ‘이상민’을 코치로 영입했다고 발표한 지난달 26일. 이렇게 묻는 전화가 구단 사무실로 여러 통 걸려 왔다고 한다. 이상민이 누군가. 선수 시절 ‘컴퓨터 가드’로 이름을 날렸다.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프로농구 올스타 팬 투표에서 9년 연속 1위를 했다. 선수 유니폼을 벗은 뒤엔 삼성에서 8년 동안이나 감독을 지냈다. 그런 이상민(51)이 코치를 맡겠다 했다고? 농구판에서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그 이상민이?

“후배들 사이에서도 ‘내가 아는 상민이 형이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3일 경기 용인시 KCC 체육관에서 만난 이 코치도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친정팀 KCC로 한 번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전창진 감독님(60)이 편하게 불러주셔서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이 궁금해 하는 ‘이상민이 KCC 코치를 받아들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다른 팀에서 오라고 했으면 안 갔을 것 같다”고 했다.

전 감독의 전화를 받은 건 지난달 23일이었다. 이 코치는 “그냥 안부전화겠거니 하고 받았다. 그런데 대뜸 ‘와서 형하고 재밌게 놀자’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엔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전 감독 특유의 화끈하고 직설적인 대답이 날아왔다. “뭔 생각이 필요해! 월요일부터 나와라!” 이렇게 해서 이상민은 월요일인 지난달 26일부터 KCC 체육관에 나오게 됐다. 이 코치는 전 감독 바로 아래 선임 코치도 아니다. KCC엔 이 코치의 연세대 5년 선배인 강양택 코치가 있다. 이 코치는 “전 감독님 제안을 받고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감독으로서는 유한 부분이 많았다. 이참에 전 감독님 스타일도 배우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시 체육관에 오는데 이게 뭐라고 떨리더라. 체육관과 숙소 모두 리모델링을 했는데 선수 때 쓰던 소파는 그대로 있더라.” 이 코치는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KCC 체육관을 16년 만에 다시 찾던 날의 기분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KCC의 전신인 현대전자에서 1997∼1998시즌 프로 데뷔를 했고 2006∼2007시즌까지 KCC에서 뛰었다. 이 기간 팬들은 ‘KCC의 이상민’이 아니라 ‘이상민의 KCC’라 부를 만큼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2007∼2008시즌을 앞두고 KCC는 직전 시즌까지 삼성에서 뛴 서장훈(49)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했다. 그러자 삼성은 이상민을 서장훈에 대한 보상 선수로 데려가 버렸다.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KCC가 이상민을 보호선수 명단에 올리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당연히 KCC 팬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 이 코치는 “그때 전화를 참 많이 받았다. 내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 (은퇴를) 말리는 전화였다”고 했다.

지난해 1월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그는 농구계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많지는 않았다고 했다. 감독을 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코치는 “1년만 쉬어도 몸이 근질근질할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1년 반을 쉬어도 그렇지는 않더라”며 “40년 넘게 농구하면서 쉬어본 게 처음이었다. 여행도 처음 해봤다. 쉬면서 큰딸 대학 졸업식도 가고, 친구들이랑 골프도 치고, 못해 봤던 것들을 했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선수 시절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도 따고 프로에서 우승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코치, 감독으로는 우승을 못해 봤다”며 “친정팀에 이왕 돌아왔으니 코치로 우승하고 싶다”고 했다. 전 감독은 “감독하다가 다시 코치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친정이고 ‘선수 이상민’이 시작된 곳이지 않나. 본인에게도 좋은 기회”라며 “스타 출신인 상민이가 중간에서 부드럽게 역할을 해주면 선수들이랑 대화도 더 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쉬는 동안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일절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이 코치는 KCC 복귀 첫날부터 5개 방송사 공동 인터뷰를 했다. 이 코치는 “주위 팬분들, 어르신들도 ‘왜 방송 안 해’ 하시는데 내가 농구장 아니면 나갈 곳이 어디 있나. 방송에 나가면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나는 캐릭터가 없다”며 웃었다.

용인=임보미 기자 bo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