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위(胃)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얼마 전 외래 진료실로 창백한 얼굴의 한 환자가 들어왔다. 20여 년 전 위장 출혈이 심해 응급수술로 위전절제술(胃全切除術)을 받고 다행히 회복됐던 환자 J 씨였다. 얼굴이 창백해진 사연을 들어 보니 필자가 대학병원에 재직 시 수술을 받고는 죽 외래진료를 잘 받아왔으나, 이후 주치의가 퇴직으로 병원을 떠나면서 외래진료에 빠지고 자기 관리에 소홀해져서 그렇다는 거다. 다행히 내시경과 혈액검사 등을 통해 악성 빈혈을 확인하고 비타민B12를 투여하는 처방으로 다시 좋아지게 됐다. 위장관외과 의사는 “위를 다 제거해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가 없어도 병원을 다니면서 정기적인 진료와 관리만 잘 받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위(胃)는 순수 우리말로 ‘밥통’ ‘양’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소화기관의 최전선에서 여러 역할을 담당한다. 식사를 해도 배가 부르지 않으면 “양도 차지 않는다”고 하고, “양껏 먹으라!” 할 때의 ‘양’은 위를 지칭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양의 어원을 보면 흥미롭다. 하늘의 주인인 태양과 햇빛을 받아 생산되는 것이 우리의 먹거리이고, 해와 햇빛, 위(渭)는 ‘양’이라는 같은 말로 쓰였다. ‘양’은 바로 ‘먹거리 또는 생명을 채우는 곳’이란 의미라고 한다.
식도와 십이지장 사이에 자루 모양으로 위치한 위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식도를 거쳐서 내려온 음식물을 일정한 시간 동안 머물게 해 위액과 골고루 섞이게 하는 거다. 그리고는 죽처럼 만들어진 음식물을 적당히 십이지장으로 조금씩 내려 보내 소화를 도우며 묵묵히 일하는 성실한 소화기관이다. 위는 단순한 소화기관으로 보이지만 복잡하면서도 무수히 예민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우선 위는 소화기관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어 음식물과 함께 들어온 세균 이물질 발암물질 등과 오랫동안 접촉하게 된다. 위액은 PH 1~2인 강산성의 염산으로 돼 있어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점액을 분비해 위 자체를 보호한다. 이러한 강산성의 위액 때문에 한때 위에는 균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산성 점액이 분비되는 위에도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균이 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위는 조기 경보기관이기도 하다. 우리의 복부 안에 염증이나 간 담낭 췌장 등 다른 소화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배가 더부룩하고 체한 듯 증상과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이는 위가 우리 몸의 이상 상태를 알려주는 경고등 역할을 해서다. 우리에게 흔하게 발생하는 충수돌기염의 경우도 오른쪽 하복부 통증이 있기 전에 위에서부터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위의 또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은 내분비기관의 역할이다. 한 끼 식사 시 위에서 분비하는 위액의 양은 대략 1ℓ 정도이고, 하루 동안 최대 약 5ℓ 정도의 위액을 분비할 수 있다고 한다. 위의 체부에서는 위산이 주로 분비되고, 아래쪽 전정부에서는 가스트린이라는 호르몬이 나와 위산 분비를 조절한다. 그리고 체부에서 내인자(內因子)라는 물질이 분비돼 인체의 필수 비타민 중 하나인 비타민B12의 흡수를 돕는다. 앞에서 언급한 J 씨처럼 위전절제 후 비타민B12의 흡수가 되지 않으면 악성 빈혈이 나타나게 된다. 이 경우에는 외부에서 비타민B12를 투여해 주면 증세가 호전된다. 그 외에도 단백질을 분해, 소화하는 펩신, 점막을 보호하는 점액 등이 위에서 분비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이지만 출혈을 한다든지, 암이 생겨 위를 전부 제거해야 할 경우가 가끔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위를 조금이라고 적게 절제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물론 외과 의사도 나중에 환자 삶의 질을 위해 가급적 위의 일부라도 남기려고 애쓴다. 이유는 위의 많은 기능 중 전부, 혹은 일부라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암이 진행됐거나 위의 중상부에 생기면 암의 완치를 위해 위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는 복잡한 수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기 위암이 위의 상부에 생긴 환자는 위의 상부만 제거하고 하부를 살려서 위의 기능 일부라도 보존하려는 수술이 많이 시도된다. 또 위를 완전히 절제하더라도 장을 활용해서 위의 저장 기능을 유지하게 하려는 최신 수술법이 연구되고 있다니, 위암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적잖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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