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85> 깊숙한 골짜기에 은거하면서 한정(閒情)을 시로 읊은 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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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나무가 장막 되어 낮에도 어둑하고(夏木成帷晝日昏·하목성유주일혼)/ 물소리와 새소리가 조용한 가운데 서로 다투네.
/ 길이 끊어져 올 사람 없는 것 이미 알지만(已知路絶無人到·이지로절무인도)/ 어여쁜 산 구름이 골짜기 문을 잠가버렸네.
이런 깊은 골짜기에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산 구름이 골짜기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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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猶倩山雲鎖洞門·유천산운쇄동문
여름 나무가 장막 되어 낮에도 어둑하고(夏木成帷晝日昏·하목성유주일혼)/ 물소리와 새소리가 조용한 가운데 서로 다투네.(水聲禽語靜中喧·수성금어정중훤)/ 길이 끊어져 올 사람 없는 것 이미 알지만(已知路絶無人到·이지로절무인도)/ 어여쁜 산 구름이 골짜기 문을 잠가버렸네.(猶倩山雲鎖洞門·유천산운쇄동문)
위 시는 조선 전기의 문인 대곡(大谷) 성운(成運·1497~1579)의 시 ‘낮에 큰 계곡에 있으니(大谷晝座·대곡주좌)’로, 그의 문집인 ‘대곡집(大谷集)’에 들어있다. 본관이 창녕인 그는 1531년(중종 26) 진사에 합격했다. 형이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로 화를 입자 은거하였다. 그 뒤 참봉·도사 등에 임명됐으나 곧 사퇴하고, 선조 때도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시문에 능했으며 은둔 성향의 시를 많이 남겼다. 시인은 깊숙한 골짜기에 은거한다. 여름이다. 나무가 우거져 한낮인데도 어둑하다. 들리는 건 새소리와 물소리뿐이다. 이 소리들이 귀에 배어 고요하게 느껴진다. 아귀다툼하는 세상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정서를 한정(閒情)이라고 한다. 이런 깊은 골짜기에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누군가 꼭 올 것만 같다. 그런데 산 구름이 골짜기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버렸다. 얼마나 그윽하면 그렇게 표현했을까.
필자가 사는 목압마을 위쪽 집에 물이 안 나온다고 이장님이 전화하셨다. 며칠 비가 내렸으니 마을 주민이 식수로 쓰는 취수원에 나뭇잎 등이 많이 쌓인 모양이다. 비가 많이 오고 나면 산에 올라 취수원을 확인한다. 필자는 마을의 물 관리자이다. 어제 아침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마을 위 국사암을 거쳐 산으로 한참 올라갔다. 삼신봉으로 바로 치고 오르는 것 같다. 평소 사람이 안 다니는 길인 데다 장마철이어서 우거져 낫으로 길을 내며 갔다.
산죽과 나무들로 어둑했다. 산돼지와 곰이 나타날까 봐 무섬증이 들었다. 짐승들 가까이 못 오게 “아~아” 소리 내며, 낫으로 나무를 툭툭 치면서 걸었다. 취수원에 다다르니 작은 폭포 아래의 물을 수로로 잇는 입구가 막혔다. 비를 잔뜩 맞으며 손으로 나뭇잎 등을 걷어내고, 수로 입구의 돌들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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