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방 한 칸을 위하여
어릴 적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던 시절이 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어서일까, 두세 살 무렵 그날들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기도 한다. 부모님은 그 시절의 가난에 관해 꽤 오래 나에게 사과했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했다. 나는 가난하지 않았으니까. 비교할 만한 삶이 적었고 부족한 게 뭔지도 몰랐던 그때, 나는 그저 웃을 일이 많던 아이였다.
대책 없이 웃음 가득하던 그날이 떠오른 건, 최근 서울 흑석동 한 아파트의 청약 기사를 보면서다. 경쟁률 82만 대 1. 집 한 칸을 갖기 위해 그렇게 어마어마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잠시, 바로 든 생각은 ‘난 왜 몰랐지?’였다. 당첨만 되면 5억원의 시세 차익이 생긴다는데, 아직 내 집이 없는데, 그렇게 남들 다 아는 좋은 기회였는데…. 어느새 내 마음은 낙첨된 82만명이 아니라 당첨된 한 명에게 이입되어 있었고, 후회와 자책이 잇따랐다. 그러다 문득,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것이다.
어쩌다 마음이 이렇게 좁아졌을까. 왜 갖지도 못할 복권 같은 것 때문에 안달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단지 마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이미 주거공간의 의미를 초과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이들에게는 자산을 불릴 가장 확실한 기회이다. 최근 깡통전세로 대표되는 빌라 전세 사기 사건을 보고 있자면 불안감을 해소할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 그러니 웃음 가득했던 아이가 늘 바늘구멍 같은 희망으로 룰렛을 돌리는 도박꾼으로 바뀌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기보다는 사회적인 현상이다.
부동산 문제는 어렵다. 이미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이 너무 커 조정하기 힘들다. 비교할 만한 삶을 차단해 그저 만족하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거가 ‘인권’의 영역이 아니라 ‘복권’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현실은 이토록 씁쓸하다. 그렇게 한 칸을 갖지 못해 내몰리는 이들을 생각하면서도, 또 내가 당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약 사이트를 뒤적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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