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면 돼’ 채찍 대신 당근, 돈으로 충성심 사는 푸틴? [월드뷰]

권윤희 2023. 7. 5.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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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 반란에 23년 철권통치 ‘흔들’
채찍 대신 ‘당근’ 숙청 대신 ‘보상’ 선택
‘반란 주동자’ 프리고진 벨라루스행 허용
반란 직후 군장병 급여 10.5% 인상 공식화

36시간의 군사 반란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3년 철권통치에 균열이 발생했다. 지도자 위상에 흠집을 낸 반란 주동자를 공개 숙청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푸틴 대통령은 채찍 대신 당근을 택했다. 군사반란 수사를 종결시키고, 반란 주동자인 민간용병기업(PMC)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을 허락했다. 군부의 반란 가담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어수선해진 군심(軍心)은 급여 인상으로 다독였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충성심과 효율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것이며, 전쟁 성과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의 반란 수습 행보가 역설적으로 권력 불안정성을 드러냈으며, 연쇄 봉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2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앞서 24일 바그너그룹 군사반란 관련 대테러 작전에 참여한 러시아 국방부, 국가근위대(국민위병), 내무부, 연방보안국, 연방경비국을 대상으로 연설하기 위해 크렘린궁 대성당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3.6.27 크렘린궁/AP 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러시아 정부가 군인과 경찰, 보안 기관 직원 급여 10.5% 인상을 공식 발표했다. 바그너 그룹 군사반란이 있은 지 6일 만이었다.

러시아 정치학자 예카테리나 슐만은 당국이 반란 며칠 만에 급여 인상을 공식화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10월 1일부터 인상된 급여를 지급하는 건은 이미 예전에 결정된 사항이나, 푸틴 대통령이 반란 수습을 위해 서둘러 공식화한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슐만은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 군사반란 수습책으로 채찍 대신 당근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매우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개인적, 정치적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슐만은 또 “(푸틴 대통령이) 대규모 탄압을 벌이기에는 체제 자체가 너무 취약하다”고도 평가했다. 군사반란에 상응하는 숙청 또는 탄압시 체제 불안정성만 가속화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정권 안정 위해 지배 엘리트 및 군심 달래기
현금 퍼부어 주요 지지기반인 군·경 충성 유도

2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앞서 24일 바그너그룹 군사반란 관련 대테러 작전에 참여한 러시아 국방부, 국가근위대(국민위병), 내무부, 연방보안국, 연방경비국을 대상으로 연설하기 위해 크렘린궁 대성당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3.6.27 크렘린궁/AP 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크렘린궁 대성당 광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앞서 24일 바그너그룹 군사반란 관련 대테러 작전에 참여한 러시아 국방부, 국가근위대(국민위병), 내무부, 연방보안국, 연방경비국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2023.6.27 크렘린궁/TASS 연합뉴스

NYT는 푸틴 대통령이 체제를 유지하고 잠재적 음모에 대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가 ‘현금 뿌리기’로 주요 지지기반인 군경에 충성을 강요하는 것과 동시에, 지배 엘리트 계급에 대한 보상과 회유로 환심을 사고 있다고 진단했다.

NYT는 전문가들 평가를 종합해 ▲군사반란 주동자인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도록 신변안전을 보장한 것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에 대한 신뢰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 ▲빅토르 졸로토프 국가근위대 대장에 지원을 약속한 것 ▲반란 사흘 만인 지난달 27일 크렘린궁 대성당 광장 ‘결의와 용기’ 의식에서 “군인과 사법 당국이 내전을 막아냈다”고 치켜세운 것 ▲그 다음날 다게스탄자치공화국을 방문해 군중에 다가가 악수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으며 심지어 가볍게 키스도 하는 등 이례적인 모습을 노출한 것 모두, 고도로 냉정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부의 반란 가담설 및 체포설이 대두되는 가운데 표면적으로는 대규모 숙청을 지양한 것 역시 정권 유지에 미칠 파장을 계산한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과 수십년간 알고 지내온 익명의 관계자 말을 인용, 바그너 군사반란 연루설 및 체포설이 불거진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통합 부사령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설사 체포됐더라도 곧 석방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뒀다. 익명의 관계자는 “장군 체포는 군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물밑 수습’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다만 지금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푸틴 대통령의 보상 및 회유 전략은 그 자체로 위험을 수반한다고 전문가는 진단했다.

“권력 불안정성 지속, 연쇄 봉기 가능성”
“충성과 효율 딜레마…전과 타격 불가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탑승하고 있다. 2023.6.28 크렘린궁 공보실/TASS 연합뉴스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군사반란 나흘 만인 28일(현지시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머리에 입을 맞추는 등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2023.6.28 AFP 연합뉴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그리고리 골로소프는 “푸틴 대통령은 단기적으로는 승리를 거뒀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는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골로소프 교수는 “프리고진의 군사반란을 목격한 다른 파벌에서 봉기를 일으키려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채찍 대신 당근을 집어든 푸틴 대통령의 선택이 오히려 추가 위협 가능성을 키울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의 선택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에도 주목했다. 러시아가 효율성 떨어지는 취약한 체제로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프리고진 반란으로 바그너 그룹마저 두동강나면서 균형 유지라는 도전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원 니콜라이 페트로프는 “푸틴 대통령과 그의 체제는 이제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관측했다.

전쟁에는 효율과 충성 모두 필요한데, 반란 여파로 푸틴 대통령이 효율성 대신 충성심을 재차 강조한 터라 전선에서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페트로프 연구원은 “효과보다 충성의 원칙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반란과 관련된 위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체제가 효율적으로 기능할 거라는 희망도 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린 ‘새로운 시대를 위한 강력한 아이디어 포럼’ 전체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2023.6.29 TASS 연합뉴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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