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인공지능 시대, 문화자본의 재발견
넓은 의미의 문화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만들어온 유무형의 모든 산물을 통칭한다. 종교도, 언어도, 요리도 문화고 인간이 만든 건 다 문화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공장, 자산, 상품 등 유형의 자본과 제품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기술과 소프트웨어 등 무형의 자산과 제품이 더 중요하다. 과학기술 사회에서는 원천기술이나 연구·개발역량 등은 무형자산이고 코딩능력이나 인사이트, 문화적 소양도 개인에게 자본이 될 수 있다.
20세기 당대 최고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그 의미를 새로 정립했다. 그는 자본을 경제자본에만 한정한 고전적 관점을 넘어 문화자본, 사회자본 등 확장된 자본 개념을 추가했다. 부르디외 사상의 정수는 단연 문화자본에 있으며 이는 3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첫째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획득한 체화한 문화자본이고 둘째는 보유, 소장, 수집하는 물건을 가리키는 객체화한 문화자본이며, 셋째는 학위, 자격증 등 사회적으로 공인된 제도화한 문화자본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체화한 문화자본이다.
문화자본을 체화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체화(體化)의 사전적 의미는 지식이나 기술, 사상 따위가 직접 경험을 통해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이다. 내 것이 돼 몸에 밴 기술이나 전문지식, 인사이트, 심미안, 취향은 배낭을 메듯이 늘 지니고 다니며 몸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체화한 문화자본은 학습, 경험, 훈련의 결과로 주어지는 산물이고 물건처럼 사고팔거나 양도할 수 없다.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도 없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하루아침에 체득할 수도 없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 경험, 반복을 거쳐 서서히 형성되고 축적되므로 돈, 시간,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일단 몸에 배 체화하면 폭발적인 능력으로 전환되고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경제자본은 도난당하거나 사기당할 위험이 있지만 체화한 문화자본은 그럴 위험도 없다.
지혜로운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한 편으로는 호모파베르(Homo Faber), 즉 공작인(工作人)의 본성을 갖고 있다. 인간에게 도구는 중요하다. 인류역사는 도구를 만들고 사용해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침반, 수레바퀴, 자동차 등 인간이 만든 위대한 도구는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족하게 만들어줬다. 산업 시대에는 기계를 잘 만들고 다루는 능력이 경쟁력이었고 디지털 시대에는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을 잘 만들고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다.
도구나 미디어를 활용하고 다루는 능력은 이를테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체화한 문화자본이다. 컴퓨터를 잘 다루고 소프트웨어를 잘 사용하는 능력, 컴퓨터 언어를 알고 코딩을 잘하는 능력, 새로운 디바이스나 스마트기기를 빨리 익혀 사용할 줄 아는 능력 등은 디지털 시대의 필수 경쟁력이다.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 인공지능을 잘 다루는 능력이 불가결하다. 단지 더 편리한 삶을 위해 배우고 익히는 차원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업무와 교육, 산업에서 절대적인 만큼 인공지능 역량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 가령 챗GPT라는 훌륭한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어떤 질문을 해서 어떻게 좋은 답을 얻을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 지시어, 명령어를 잘 구성해 인공지능으로부터 최적의 답을 얻는 것을 전문용어로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이라고 한다. 이 또한 거저 얻을 수 없으며 반복과 학습, 시행착오와 훈련을 거쳐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그에 걸맞은 문화자본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만들고 활용하는 능력은 체화한 문화자본이고 인공지능 개발과 사용에 필요한 고사양의 컴퓨터와 스마트기기는 객체화한 문화자본이며 인공지능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받는 수료증, 나노학위, 자격증 등은 제도화한 문화자본이다.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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