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53. 삼척 세모 레스토랑

구정민 2023. 7. 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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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맛으로 30년, 모두가 추억하는 곳
박정목·정정희 부부 31년째 식당 운영
생일·졸업식 등 특별한 날 맛보던 경양식
원목 단체석·고풍 인테리어 레트로 감성
이른 새벽 출근 하루 100인분 식사 준비
모든 음식 정성 다해 내놓는 철칙 한결
대표 메뉴 ‘세모정식’ 돈가스·스테이크에
스파게티·샐러드 등 10가지 재료 듬뿍
“아이들 손잡고 다시 찾은 손님 보면 뭉클
오래하고 싶은 마음 생겨 여유 갖고 장사”
▲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세모 레스토랑

사라져가니 그리운 것 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은 경양식(輕洋食)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일 것이다. 1970~1990년대만 해도 생일날이나 졸업식, 상견례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방문하기 어려운 소위 고급 음식점이었다. 평소 맛보기 어려운 돈가스와 생선가스, 함박 스테이크 등을 한 접시에 담아 내놓으면서 우리에게 서양식 요리를 본격 알려준 곳이기도 하다.

경양식은 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를 뜻한다. 지금이야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외식 문화가 다양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외식은 중국집 아니면 경양식집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등 새로운 형태의 외식 문화가 등장하면서 쇠퇴하던 경양식 레스토랑이 최근 문화 전반에 퍼지고 있는 레트로 분위기를 타고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 박정목·정정희 부부

삼척에서 30년 넘게 경양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삼척시 남양동 대로변 건물 2층에 위치한 ‘세모 레스토랑’은 옛 추억 속 경양식 집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박정목(62)·정정희(64)씨 부부가 지난 1992년 6월 문을 열고 영업을 했으니, 올해로 꼭 31년째를 맞고 있다. 가게 간판과 내부 분위기 등은 거의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동굴 내부에 있는 듯한 천장 모습과 고급스러운 내부 인테리어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30년 넘게 재미를 선사한다. 이 곳은 빛바랜 소파와 원목 스타일의 단체석 등 레트로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경양식 돈가스 특유의 양념 소스와 추억의 수프를 맛볼 수 있어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여전히 많이 찾는다.

삼척 토박이인 박정목씨는 군 제대 직후인 1982년 부산 금형 공장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 곳에서 지금의 아내인 정정희씨를 만나 20대 젊은 나이에 1남2녀 자녀를 연년생으로 얻어 단란한 가족을 꾸렸다. 하지만 집안에서 맏이인데다 타향살이에 지쳐가던 1990년 명절을 보내려 찾은 고향 사촌형님으로부터 터미널에서 제과점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가족들과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제빵 기술도 없이 덜컥 제과점을 맡았다. 아내가 옆에서 분식을 하면서 제법 장사도 잘 됐지만, 제빵 기술이 없으니 남는 것이 없었다.

▲ 레트로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삼척 세모 레스토랑 내부 인테리어

그러다가 눈을 돌린 것이 당시 유행하던 경양식 레스토랑이었다. 도심 한복판 대로변에 건물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2층에 레스토랑을 열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박정목씨는 은행 빚에다가 주변 친척들 도움까지 얻어 힘들게 레스토랑을 열었다. 하지만 이 또한 기술 없이 하려다 보니 주방장과 지배인, 홀 서빙 등 사람들을 구해야 했고 장사가 제법 잘 됐음에도 불구, 매달 적자를 기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하는 사람만 7~8명에 달하니, 이들 인건비는 물론이고 은행 빚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까지 일정 부분 갚고 나면 매달 살아가는 것이 빠듯했다.

그러기를 2년여… 박정목씨는 당시 처남의 친구였던 주방장에게 사람 한번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당시 주방장이 흔쾌히 응하면서 자신이 원하긴 했지만 그래도 엉겹결에 주방장이 됐다.

지금도 새벽 4~5시면 일어나 레스토랑으로 출근해 경양식집 특유의 소스를 끓이고 하루 80~100명분의 식사를 만들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모든 음식은 정성을 다해 직접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이미 3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철칙이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원칙이다.

▲ 삼척 세모 레스토랑 세모정식.

이곳의 대표 메뉴는 ‘세모 정식’이다. 먼저 크림수프가 먼저 나와 입맛을 살린다. 이어 박정목씨가 매일 새벽 돼지고기를 직접 두들겨 만든 돈가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맛을 더한 함박스테이크, 햄스테이크, 생선가스 등이 한 접시에 올려져 나온다. 여기에 스파게티와 양배추 샐러드, 삶은 콩, 사과, 맛살 등 줄잡아 10가지 재료가 한데 담겨 있다. 사이드 메뉴로 밥이 나오고 한국식 경양식 집이라면 반드시 나와야 하는 단무지와 총각김치가 곁들여져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뒷맛을 잡아준다. 가격은 1만5000원이다. 단품 메뉴도 있는데, 함박스테이크(1만3000원)와 한우 채끝살인 비후가스(1만5000원), 왕돈가스(돼지 등심·1만2000원), 돈가스(1만1000원), 생선가스(1만1000원) 등이다. 이 모든 음식은 당연하지만 박정목 씨가 직접 만든다.

▲ 레트로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삼척 세모 레스토랑 내부 인테리어

박정목씨 부부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온 손님들이 “저도 아이들 나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왔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커서 결혼도 하고 아이와 함께 레스토랑을 찾았네요”라는 말을 할 때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한다. 이제는 힘에 부쳐 그만두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최소 70세까지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이유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동안 브레이크 타임을 갖고 쉬기로 했다. 하루 판매할 양도 정해놓고 재료가 소진되면 장사를 멈추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쉬어볼 요량이다.

박정목씨는 “명절 때나 손님이 많을 때는 한창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싶은 아이들을 불러다 설거지 등 일을 많이 시켰어요.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려요. 하지만 욕심 내지 말고 겸손하게 끈기를 갖고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때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삼척을 대표하는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계속 운영되길 바라는 세모 레스토랑. 박 대표는 지금도 주방에서 돈가스용 돼지 등심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구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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