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300만 달러 깎은 웨스트브룩, ‘가성비 선수’로 거듭날까
요즘 NBA(미 프로농구)에선 다년 고액 계약을 맺은 스타들의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특급 FA(자유계약선수)나 재계약 시점을 맞은 리그 간판급 선수들은 3~5년간 평균 4000만 달러(약 520억원) 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MVP(최우수선수), ALL-NBA팀, 올해의 수비수 선정 등 특정 자격 요건을 충족할 경우 연봉이 5000만 달러(약 650억원) 이상으로 치솟는 슈퍼 계약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러셀 웨스트브룩(35·190cm)의 사례는 정반대다. 거액의 연봉 삭감을 감수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주말 웨스트브룩은 LA 클리퍼스와 재계약을 했다. 2년간 총액 786만 달러(약 102억원) 규모의 FA계약에 합의했다. 2023-2024시즌 연봉은 383만 달러(약 50억원)다. 지난 시즌 연봉 4706만 달러(약 611억원)에서 4300만 달러(약 560억원) 가량 깎였다. 이는 리그 역사상 가장 큰 급여 삭감에 해당한다.
‘종전 기록’은 블레이크 그리핀(34·현 보스턴 셀틱스)이 갖고 있던 2950만 달러(384억원)였다. 2021-2022시즌 3240만 달러(약 422억원)에서 2022-2023시즌 290만 달러(약 38억원)로 줄었다. 기량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이다.
웨스트브룩의 케이스는 ‘기량 저하’와는 별 관련이 없다. 그는 2022-2023시즌을 LA 레이커스에서 시작했다가 지난 2월 8일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유타 재즈로 옮겼다. 실제로 재즈에서 뛰지는 않았고, 얼마 후 LA 클리퍼스와 계약했다. 다소 복잡한 과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웨스트브룩은 연봉 손해를 거의 보지 않았다.
포인트 가드인 그는 레이커스에서 뛸 때보다 클리퍼스로 옮긴 뒤 효율성 측면에서 좋아졌다. 평균 득점(15.9점-15.8점)과 어시스트(7.5개-7.6개)는 비슷했고, 리바운드(6.2개-4.9개)는 약간 줄었다. 대신 슛 성공률이 41.7%(레이커스·52경기)에서 48.9%(클리퍼스·21경기)로 높아졌다는 점이 돋보였다. 출전시간도 평균 28분40초에서 30분10초로 늘어났다.
웨스트브룩은 특히 피닉스 선스와 벌인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평균 38분20초 가량을 뛰며 23.6득점 7.4어시스트, 7.6리바운드로 활약했다. 팀이 1승4패로 져 탈락하긴 했지만, 웨스트브룩은 클리퍼스에서 자리를 잡는 모습이었다.
2023-2024시즌에 클리퍼스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폴 조지(슈팅 가드 겸 스몰 포워드)와 카와이 레너드(스몰포워드)이며, 액수는 4564만 달러(약 594억원)다. 클리퍼스는 팀 연봉 상한액(샐러리캡)에 여유가 적어 웨스트브룩를 잡고 싶어도 많은 돈을 안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웨스트브룩이 먼저 구단 측에 “이곳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고 한다. 결국 10년차 이상 베테랑 선수에게 보장된 최저 연봉(약 320만 달러)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합의를 했다.
LA 카운티의 롱비치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UCLA)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다녔다. 2008년 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뽑혔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시절이던 2017년엔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고, 득점왕 2번과 어시스트 1위 3번을 했다. 올스타엔 9번 뽑혔고, 올스타전 MVP도 2번 차지헀다.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 멤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클라호마시티, 휴스턴 로키츠, 워싱턴 위저즈, LA 레이커스와 클리퍼스에서 15시즌을 뛰는 동안 NBA 챔피언 반지를 하나도 끼어보지 못했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뛰었던 2012년에 처음 챔피언전에 올랐는데, 당시 르브론 제임스(현 LA 레이커스)가 이끌었던 마이애미 히트에 1승4패로 져 준우승을 했다.
통산 연봉으로만 약 3억4000만 달러(약 4423억원)를 벌어들인 웨스트브룩은 돈 욕심 보다는 우승 경쟁력이 있는 팀에서 뛰기 위해 클리퍼스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빠른 공격 템포와 저돌적인 돌파, 감각적인 어시스트 능력, 한 시즌 평균 73경기를 소화한 ‘내구성’이 그의 강점으로 꼽힌다. NBA 역대 트리플 더블(공·수 3부문 두 자릿수 기록) 1위 기록(198경기)도 갖고 있다. 평균 두 자릿수 득점·어시스트·리바운드를 동시에 달성한 시즌이 4번이나 된다.
반면 혼자 좌충우돌하며 경기 흐름을 망치거나, 슛을 난사하는 성향을 보일 때도 잦았다. 역대 연봉 최다 삭감을 감수한 웨스트브룩이 다음 시즌엔 ‘최고 가성비 선수’로 변신할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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