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현기영 “이번 소설은 제주 4·3사건 3만 원혼들에 바치는 공물”

김용출 2023. 7. 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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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제주도우다’ 펴낸 현기영
“4·3영령들 꿈에 나타나 ‘뭘했냐’ 질책
제대로 다시 써보라 명령하는 것 같아”
‘순이 삼촌’ 후 45년 만에 정면으로 다뤄
4년간 원고지 3500매 분량 집필 ‘노작’
일제강점기 말부터 해방과 4·3까지
제주 젊은이들의 수난·항쟁·사랑 담아
“사실기록 넘어 당시 시대정신 되짚어
차기작은 나무·자연에 대해 쓸 예정”

네가 뭘 했다고 4·3에서 벗어나려 하느냐. 어딘가에서 고문을 받고 있었다. 매를 맞고, 손가락이 짓이겨지고…. 오래전 보안사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고문이었다. 고통은 온몸과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몸의 모든 세포막이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병아리의 입처럼 열리는 듯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을 고문하는 이들을 확인하려 했다. 보안사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설마? 그들의 말을 듣고서야 모든 게 분명해졌다. 4·3 영령들이었다.

언젠가, 소설가 현기영은 뜻밖에도 4·3 영령들에게 고문을 받는 악몽을 꿨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1978년 단편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해 금기의 영역이던 4·3을 광장으로 끌어냈고, 이후에도 4·3을 다룬 작품을 여러 편 썼던 그가 아니었던가.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살이도 겪은 뒤 고향 제주에 부채를 갚았다는 심정이었건만. 그 영령들이 다시 명령하는 것 같았다. 4·3을 제대로 다룬 작품을 한번 써 보라고.
원로 소설가 현기영이 4·3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을 펴냈다. 그는 “작가는 이것저것 살피면서 그 먼 길을 느리게 걸어갈 텐데, 독자도 그 느린 행보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했다. 출판사 제공
“운명적으로 쓰게 됐다고 얘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혼이 제대로 안 돼서 저승에 가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고 있는 3만의 원혼이 저를 추동했다고 생각해요. 캄캄한 방 속에서 압도적인 크기의 코끼리를 더듬거리는 시간이었어요. 1948년 겨울 군경 토벌대가 한라산을 에워싸고 토벌을 벌일 때 동굴에 숨은 양민들이 빛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출구를 향해 더듬으며 나아가는 듯한 암중모색의 4년이었지요. 그렇다고 힘들게 쓰진 않았어요. 그동안 중단편들을 썼으니, 장편을 제대로 써서 3만 원혼들에게 공물(貢物)로 바치고 싶었습니다.”

원로 소설가 현기영(82)이 긴 호흡으로 제주 4·3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전 3권·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4년에 걸쳐서 200자 원고지 3500장에 담아낸 노작.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해방공간과 4·3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젊은이들의 수난과 항쟁 그리고 빛나는 열정과 사랑을 담아냈다. ‘순이 삼촌’을 발표한 이후 무려 45년 만이다.

소설은 영미와 창근 부부가 4·3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서 영미 할아버지 안창세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창세는 영미와 창근 부부의 끈질긴 설득에 의해서 마침내 입을 열고, 제주 조천을 배경으로 1943년부터 해방공간을 거쳐서 4·3 발발과 토벌이 벌어진 1948년 겨울의 역사 현장으로 안내한다. 그곳에는 무정부주의와 민주주의, 공산주의, 우파 민족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경향을 가진 제주 청년들이 약동하고 있었다. 새 나라 새 사회 건설에 대한 낙관주의적 열정으로.
“난 장발이 성님의 무정부주의가 마음에 들어. ‘우리는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다’라는 말이 난 좋아. 작년에 삼팔선이 그어진 직후에 일본에서 귀향민이 들어올 때 맥아더 사령부가 물었주, 남과 북 중에 어느 쪽으로 가겠느냐고. 그때 우리 제주 백성들은 이렇게 대답했주. ‘우리는 북조선도 남조선도 아니고 제주도다!’… 예예, 맞수다.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2권 164∼172쪽)

제주 젊은이들의 열정은 견고한 현실의 벽을 만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가 좌초하고 만다. 그들은 결국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휩쓸려 희생된다.

4·3을 문학을 통해서 처음 광장으로 이끌어 냈던 현기영은 왜 또다시 4·3을, 그것도 대하소설로 써야 했을까. 이번 장편 속의 4·3과 제주 사람들의 모습은 이전 작품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현기영을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빌딩에서 기자간담회로 만났다.

―다시 4·3이다. 우리는 왜 제주 4·3을 다시 직시해야 하는가.

“이번에 70여년 전 이야기를 썼는데, 출판사에서 역사소설이라고 했더라. 역사소설이 아니라 현대소설이다. 왜냐하면 제주 4·3은 아직도 대한민국 공식 역사에 편입되지 못한 당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에서 한반도의 정치적 경제적 모순이 아주 집약적으로 나타난 게 4·3이었다. 4·3을 통해서 해방공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고, 한국전쟁 안팎에 양민 학살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당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다. 역사책은 4·3 때 3만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만 기록하지만 시대정신을 비롯해 의미 있는 질문은 없다. 하지만 소설은 통계 숫자를 떠나서 3만개의 사건과 죽은 3만명 개개인을 다시 살려 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와 소설의 차이다.”

―집필 과정에서 고민이 깊었거나 힘들었던 순간은.

“내가 애정을 주었던 두 쌍의 젊은이가 있다. 새 국가를 우리가 만들면 잘될 것이다, 모든 게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 순수 낙관주의를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도 1948년 12월 대살육이 벌어질 때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했다. 3만여명이 죽었는데, 그들이라고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것을 그릴 때 가슴이 참 아팠다. 또 각양각색의 고문을 그대로 묘사하자니 멀미가 나서 묘사할 수가 없어서 실제보다 가볍게 완화했다.”

―이전에 4·3을 다룬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지.

“4·3을 다룬 이전 작품들은 희생 담론, 수난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3만이나 되는 양민들이 희생되는 수난은 항쟁과 표리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전과 달리 항쟁 부분도 수난과 함께 다루었다. 해방공간 3년 동안 새 나라를 세우려는 제주 젊은이들의 피 끓는 열정과 열광을 탐구하는 한편, 그들의 로맨스, 연애도 함께 넣었다. 소설의 전략이 아니라 실제 당시 젊은이들의 삶이 그랬다. 참혹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고, 제주 젊은이들의 기쁨과 낭만도 함께 담겨 있다.”

기자간담회에선 작품의 배경이 되는 4·3을 둘러싼 질문도 적지 않게 나왔다. 4·3의 성격이나 재평가론, 김달삼을 비롯한 소장파의 무장봉기론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태영호의 ‘김일성 지시설’ 논란까지.

―4·3은 젊은이들이 주도한 젊은이 중심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젊은이들이 주도한 사건이다. 지도부와 산군, 게릴라의 다수는 김달삼을 비롯해 젊은 20대였고, 30대 이상은 온건파로 소장파의 무장 투쟁을 말렸다. 나머지는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이었고, 양민들이었다. 열광적으로 새 시대 새 국가를 갈망했던 젊은이들이 떼춤을 추고 떼창 속에서 사랑하고 싸웠다.”

1941년 제주 노형리에서 나고 자란 현기영은 1975년 단편소설 ‘아버지’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등을,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누란’ 등을 펴냈다. 만해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앞으로 작품 계획은.

“나로서는 길게 썼다. 4년에 걸쳐 썼으니까. 앞으로 4·3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소설을 다 쓴 지 4개월이 지났는데, 지금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다. 나무에 대해 쓸 생각이다. 도시의 회색 공간에서 살다 보니 인간이 자연의 소산,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어느 순간, 그의 마음은 이미 눈이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 억새밭에 가려진 동굴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두 젊은이 대림과 두길이 나란히 누워서 맞는 죽음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을지도.

“우리는 죽지만 다시 태어날 거다. 대지의 자궁은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니까. 모든 것이 불에 타고 모든 사람이 죽었지만, 그러나 어머니 대지는 죽은 자식들을 끌어안을 거여. 땅속 혈맥들이 고동치는 소리가 지금 내 귀에 들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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