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형 전 주중대사 “거세지는 中 전랑외교… 보복 두려워 말고 할 말은 해야” [세상을 보는 창]
주권평등·상호존중·호혜공영 ‘기본자세’
싱하이밍 대사 韓 겁박 발언 금도 벗어나
대만문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해야
‘하나의 중국 정책’ 존중, 공통이익 찾길
러 용병반란에도 푸틴 실각 가능성 작아
한미동맹 강화·한일관계 정상화 추진 등
윤석열 정부의 기본 외교정책 적극 공감
원칙과 상식에 입각 국익수호 추구해야
동북아 정세가 살얼음판이다. 윤석열정부 들어 한·미·일 삼각 협력 체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에 맞서는 북·중·러의 결속도 단단해진다. 북한은 밑도 끝도 없는 도발에 여념이 없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기 체제 이후 주변국을 위협하는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도 강도를 더해간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섰던 러시아에서는 바그너그룹 용병 반란 사태까지 벌어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강대국에 끼인 한국은 어떻게 해야 평화와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한·중 관계가 아슬아슬하다. 현 상황을 진단한다면.
“수교 후 30여년간 한·중 관계는 정치·경제·문화·인적교류 등 전 분야에 걸쳐 큰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각자 내부의 변화나 양자·다자 차원의 문제들로 관계가 경색되거나 긴장 상태에 있던 적이 많다. 대표적 사례가 마늘 파동(2000년), 동북공정 논란(2002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2016∼2017년) 등이다. 최근 한·중 관계에 대한 우려가 있으나 양측은 서로 중요하고 공동 발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3000억달러를 넘은 교역에서 보듯이 경제 관계는 증진되고 있다. 몇몇 외부에 표출된 갈등 국면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얼마 전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나라는 후회할 것”이라며 한국을 겁박했는데 그 배경과 의도는.
“싱 대사의 발언은 금도를 벗어났다. 그간 심화되어 온 미·중 간 대립·대결 국면에서 한국이 미국 편으로만 경사되지 않기를 바라는 중국 당국의 희망이 거칠게 표현된 것이다. 현 정부 들어 한층 강화된 한·미동맹 관계를 의식, 친중 성향의 이전 정부와 비교를 하며 한국 내 첨예한 여야 대립에 불을 지폈다. 여권에는 심리적 부담을 주고 야권에는 친중 분위기 활성화를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싱 대사의 발언과 전달 방법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국민 감정을 악화하는 역효과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문제 발언을 평가해 달라.
“중국이 제일 싫어하는 게 대만 문제 언급이다.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玩火者必自焚)’ 같은 극렬한 반응을 서슴지 않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5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나 공식문서에 대만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합의했는데 윤 대통령이 이를 반복한 것이다. 중국 반응이 과한 거다. 하지만 위안스카이 발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만 주체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는데 구한말 형편없던 국력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왜 이런 패배주의·자기비하 발언으로 (국민을) 불편하게 하나. 국가원수와 책임당국자의 발언은 반향과 국가이익 등까지 따져 정제돼야 한다.”
―중국 보복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자국 입장과 다르다고 보복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고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2017년 사드 배치 때 중국이 보복을 가했다. 롯데 등 기업과 관광 분야에서 피해가 컸지만 중국이 필요로 하는 무역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중국은 호주와 노르웨이에도 비정상적인 보복을 가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슬그머니 풀었다. 보복이 있다고 해서 우리 입장을 바꾸는 건 있을 수 없다. 손실이 있더라도 원칙에 맞게 대응하는 게 옳다.”
―한·중 관계 경색을 푸는 해법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달 26일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킨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중국과 척질 이유가 없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중국 측의 공식 대응이라고 본다. 공통이익에 중점을 두면 이번 갈등을 넘길 수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음)의 지혜가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 상호 경제 발전, 한자문화권의 융성 등은 중국도 추구하는 이익이다. 최근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했지만 우리도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하며 공통이익을 찾아 키우고 이해가 다른 부분은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
―러시아에서 용병 반란이 하루 만에 끝났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권력 기반과 정치 지도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용병 반란은 분명 푸틴 정부의 권위를 크게 실추시켰고 정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러시아 체제의 특성상 어느 특정 집단도 푸틴을 대신할 인물을 내세우거나 내세울 생각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정·관계, 경제계 지도자들이 지난 23년간 푸틴을 정점으로 봉건적 통치 체제를 유지해 왔다. 푸틴 이외에 대안이 없다. 반란이 유혈 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만큼 푸틴의 실각이나 변고 가능성은 작다.”
―1년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 전쟁도 영향을 줄 듯한데.
“반란 사건은 러시아군 장병들의 사기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우크라 대반격이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또 러시아 경제가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어 종전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중국의 역할, 미국 등 서방의 우크라 지원 정도 등 변수가 많다.”
―우크라 탄약 우회 지원 문제로 한·러 관계가 갈등을 빚었는데.
“군사적 침공을 당한 우크라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남북 대치 상황인 만큼 다른 서방 국가처럼 마음대로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미국 등 서방에서 지원 압력이 커지더라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 이해를 얻어야 한다.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책은 유지하는 게 맞는다.”
―향후 미·중 관계를 전망한다면.
“미·중 관계는 협력보다 대립·대결 국면이 더 현저해질 것으로 본다. 미·중 관계는 한·중, 한·러 관계에 영향을 미칠 텐데 주요 현안마다 국익을 투영해 어느 게 맞는지 판단해 입장을 정해야 한다.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 간 고위급 교류 재개에 합의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중 관계 개선에 대비해 우리 주도의 한·중, 남북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방안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난 30여년간 우리를 포함한 관계국의 지난한 노력이 다 소용없게 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 보유를 공식 인정할 수 없고 비핵화 달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당위성은 여전하다. 현재 남북관계나 국제 정세에 비추어 북한 비핵화 달성을 위한 양자·다자 차원의 노력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국으로부터 실질적인 안보자산을 확보해 북핵 억지력을 강화하고 한국형 3축 체계 고도화 등 자구 노력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윤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데.
“올바른 방향이다. 양측이 미래 지향적인 자세와 행동을 하는 것이 각자에게 이롭다. 현존하는 북한의 안보 위협 속에서 중국의 패권적 부상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 발전에서도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많다. 역사를 잊어서도 안 되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도 안 된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외교 현안마다 정치권의 갈등과 반목이 심하다.
“외교 문제의 국내정치화는 피해야 한다. 자중지란은 외교력을 약화한다. 과거 노무현정부와 박근혜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중 FTA를 추진했는데 그때 여야는 정쟁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야당이 과학적 문제인 오염수 방류를 정치화하고 철회 촉구 결의안까지 처리한 건 다수의 횡포다. 야당도 정치 득실이 아니라 국익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정권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인데 아예 정책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 주요 현안마다 야당에 논리정연하게 설명, 초당적 지지를 확보하고 토론을 통해 국론을 모아 가야 한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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