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레슬링계 미투 사태’ 6개월…“딸이 피해자 아닌 영웅 되길 원해”

김서영 기자 2023. 7. 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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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협회장 늑장 기소 속
선수 보호 요구 목소리 계속

인도 영화 <당갈>은 편견을 깨부수고 인도에 첫 국제대회 메달을 안겨준 여성 레슬링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당갈>의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마주해야 하는 벽은 승부의 세계보다 잔혹하고 높았다. 지난 반년 동안 경기장이 아닌 거리로 나가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벌여야 했던 인도의 여성 레슬링 선수들은 또 하나의 벽을 깨부수려 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3일(현지시간) 인도 레슬링계에서 ‘미투’가 터져나온 이후, 선수 보호와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투’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여성 선수 6명과 남성 선수 1명이다. 여기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당갈>의 실제 주인공 조카인 비네시 포가트 선수(28),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인도에 최초로 메달을 안긴 삭시 말리크 선수(30) 등이 동참했다. 이들은 브리지 부샨 싱 인도레슬링협회장이 지난 수년 동안 선수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며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싱 회장은 여당 인도국민당(BJP) 소속 6선 의원이자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측근이다.

지난 1월 포가트는 적어도 10명 이상의 여성 선수가 싱 회장과 코치들에게 당한 성적 피해를 자신에게 알려왔다면서, 문제를 제기한 선수들은 오히려 경기할 기회를 제한당했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인도레슬링협회를 이끌고 있는 싱 회장은 “사실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자신의 혐의를 강력 부인했으나, ‘미투’ 이후 협회 업무에선 배제됐다.

유명 선수들이 나섰음에도 인도 정부는 사태 해결에 미온적이었다. 지난 1월 이 사안이 처음 공론화된 후 정부는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조사는 수개월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 4월부터 선수들은 뉴델리에서 농성과 시위를 벌였다.당시 말리크는 “선수의 임무는 훈련하고 경기하고 승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는 이를 계속할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결국 지난달 초 인도 정부는 빠른 조사를 약속했다. 경찰은 싱 회장을 기소했고, 법원에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초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6.5%는 레슬링 선수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답했다. 싱 회장을 믿는다는 응답은 17.3%에 불과했다. 시위는 잦아들었지만, 이달에 치러질 인도레슬링협회 회장 선거를 앞두고 선수와 부모들은 여성 지도자 임명 등 제도 개선 및 선수 보호를 촉구하고 나섰다. 두 자매를 레슬링 선수로 키우고 있는 한 아버지는 “우리 딸들이 피해자가 아닌 영웅이 되길 바란다. 정부는 여성 코치를 임명해 전체적인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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