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분리징수 땐 권력 감시자 역할 위축”
현실화 땐 재원 대폭 줄어
시사·교양·다큐 ‘직격타’
방송사 일자리 수도 감소
‘의미’ 비중 높이는 수신료
월 2500원 이상 가치 존재
지상파 방송에는 ‘광고주 친화적이지 않은 영상’이 있다. 시사, 교양, 다큐멘터리가 대표적이다. 시사 프로그램은 기업, 정부 등 권력을 감시한다. <아침마당> <6시 내 고향> 같은 교양 프로그램은 화제성은 없지만 TV 이외에 다른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친구’가 된다.
지난달 29일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 SBS,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소속 작가 300여명은 “공영방송이 아니라면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사회적 약자가 있다”며 “공영방송을 흔드는 분리징수 추진을 우려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가 유튜브의 노란 딱지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4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만난 이소영 MBC 구성작가협의회장과 허정원 KBS 구성작가협의회장은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하면 재원이 크게 줄고, 시사·교양·다큐멘터리 프로그램부터 직격타를 맞을 것”이라며 “넷플릭스가 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가 피사체인 방송, 사회적 약자가 시청자인 프로그램을 하는 게 공영방송의 의미”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전체회의를 열고 TV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분리해 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계획이다. KBS는 분리징수를 하면 징수율이 떨어지고 관련 비용도 늘어 수신료 수입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한다.
작가들은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행되면 오히려 시청자의 콘텐츠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영방송의 재원이 흔들리면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은 물론 <차마고도> 같은 대형 다큐멘터리도 사라질 수 있다.
제작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에 이르는 장기 기획 다큐멘터리는 인건비만 따져도 ‘효율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KBS가 제작하는 <환경스페셜>은 다루는 범위가 ‘전 지구적’이어서 해외 취재가 잦고 비용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허 회장은 “제작비로 따진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KBS는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재원이 있어 이런 다큐멘터리도 제작할 수 있고, 시청자의 선택권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2년 <PD수첩>에서 해고된 경험이 있다. 이 회장은 이번에도 일자리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자체도 점차 줄고 있는데, 수신료 분리징수로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마저 축소된다면 전체 일자리 수도 감소한다. 이 회장은 “KBS의 수신료 분리징수 사태를 보면서 MBC에도 제작비가 줄어드는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나 두렵다”며 “후배 작가들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시사 콘텐츠를 만드는 두 작가는 모두 ‘독립적 재원을 가진 공영방송’의 의미를 강조했다.
허 회장은 “외주제작사, 다른 방송사에서도 일해봤지만, KBS의 다른 점은 재미와 의미라는 방송의 두 요소 중 의미의 비중을 낮추지 않는 것”이라며 “재원이 흔들린다면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감시도 할 수 없게 되고, 이런 기능은 (현재 수신료인) 월 2500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우리는 한 시민으로 재미만 추구하며 살 수 없다”며 “넷플릭스가 하지 못하는 ‘언론’의 기능을 하기 위해 공영방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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