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강제동원 배상금 공탁 거부…첫 단계부터 제동 걸린 ‘3자 변제’

이혜리·박은경 기자 2023. 7. 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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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법 공탁관, 1건 불수리
“양금덕씨 비동의…사유 안 돼”
외교부 반발 “이의절차 착수”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를 배상한다며 법원에 공탁 신청을 했으나 광주지법 공탁관이 ‘불수리’ 결정했다. 피해자 동의 없이 밀어붙인 정부의 ‘제3자 변제’가 법적 절차의 첫 단계부터 막힌 것이다.

4일 광주지법에 따르면, 광주지법 공탁관은 전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신해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씨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낸 공탁 신청에 대해 ‘공탁 사유가 없다’고 보고 불수리 결정했다.

공탁은 채무자가 채무를 갚으려고 하는데 채권자가 받기를 거부하거나 받을 수 없을 때 그 돈을 법원에 일단 맡기는 것이다. 공탁 신청이 접수되면 공탁관이 심사해 수리·불수리 여부를 결정한다. 통상 공탁은 관할 법원, 공탁자·피공탁자의 정확한 기재 여부 등 형식적 요건이 충족되면 대체로 수리된다는 점에서 이번 불수리 결정은 이례적이다.

불수리 결정을 한 광주지법 공탁관은 양씨가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표명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씨, 다른 피해자인 이춘식씨, 박해옥·정창희씨 유족은 지난 3월 재단에 일본 측의 사실 인정과 사과가 없는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할 뜻이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공탁관은 이를 민법 제469조1항의 단서가 규정하는 상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민법 제469조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 때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2항은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피해자 측은 이 조항을 들어 피해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채무자인 일본 기업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인 정부가 배상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피해자 “3자 변제안 무효 확인”…외교부 “재판받을 권리 침해”

특히 일본 정부가 불법적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점, 국가폭력에 대한 피해 배상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법원이 정부 공탁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정부는 공탁이 적법하다고 주장했지만 광주지법 공탁관은 피해자 측 손을 들어주었다. 피해자 측 이상갑 변호사는 “이번 불수리 결정은 재단이 제3자로서 변제할 자격이 없고 공탁도 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대책인지를 검토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이번 결정으로) 정부가 만든 제3자 변제안이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고 했다.

외교부는 불수리 결정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즉시 이의절차에 착수해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공탁 공무원이 형식상 요건을 완전히 갖춘 공탁 신청에 대해 제3자 변제 법리를 제시하며 불수리 결정한 것은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면서 “헌법상 보장된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탁관은 정부의 이의신청이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수리하는 것으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정부의 이의신청이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광주지법으로 사건을 송부한다. 이후 광주지법 법관이 불수리 결정이 적절한지 따지게 된다. 광주지법 법관도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정부는 또 불복해 항고할 수 있다. 이 절차 끝에 법원이 공탁을 수리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측이 공탁 무효소송을 예고한 터라 제3자 변제의 적법성을 둘러싼 공방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법은 이춘식씨 관련 재단의 공탁 신청은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반려했다. 이 건과 전주지법 등에 접수된 2건에 대해서도 공탁관의 정식 심사가 진행되면 추가 불수리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혜리·박은경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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