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이 제동 건 강제동원 공탁금, 정부 피해자 뜻 존중해야
정부가 일본이 빠진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유족 4명의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개시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배상금을 법원에 맡기는 식으로 강제동원 배상 절차를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다.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유족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일본 피고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한다는 제3자 변제안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지 4개월 만이다. 그러나 이 조처는 피해자의 명확한 의사에 반해 밀어붙이는 것이라 부당하다. 또 피해자 동의 없는 제3자 변제 공탁이 법적으로 유효한지도 문제다. 당장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광주지방법원은 4일 정부가 공탁 절차를 시작한 피해자 양금덕씨의 공탁금을 받지 않는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가 공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힐 경우 제3자 변제를 거부할 수 있다는 민법 규정을 근거로 삼았다. 정부의 공탁 강행 자체가 무리함을 입증한 셈이다. 외교부는 즉각 이의신청 절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도 공탁 무효 소송을 예고한 터라 공탁금의 적법성부터 법적 분쟁이 길어질 상황에 처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 측은 뒷짐 진 채 소송에서 벗어나고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국내 분쟁으로 변질될 것이다.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 3월 제3자 변제안 발표를 ‘물컵 반 잔’에 비유하고, 나머지 절반은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채워질 걸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의 물은 하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정부가 기대한 일본 정부의 포괄적인 사죄,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여는 없었다. 일본이 아무런 호응도 하지 않은 상황에 정부가 굳이 ‘공탁’ 카드까지 급하게 꺼내들며 이 문제를 강제로 매듭지으려는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강행하는 것도 의문이다. 피해자 지원 단체가 제3자 변제안 거부 피해자들을 위한 시민 모금운동에 나서자 급해진 건가. 아니면 일본 측 책임 인정과 사과 문제를 하루빨리 끝내보려는 것인가.
법원의 ‘불수리’ 결정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제3자로 변제할 자격이 없고 공탁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를 엄중히 새겨야 한다. ‘줄 돈을 법원에 맡겼으니 채무는 사라졌다’는 식으로 정부가 공탁에 나선 것은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는 치졸한 처사다. 정부는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의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죄를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뜻부터 헤아리고, 제3자 변제 배상금의 공탁 절차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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