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해결사’ 나선 前 부총리…김동연, 인도에서 연이틀 ‘광폭 행보’

“중국기업으로 오인” 등 기업 호소에
“함께 고민하자”며 적극적 해법 모색
현지기업 대표·인도 경제인 등 회동
“대한민국 외교는 용산 아니라 광교에”
“인도와 믿음 갖고 서로 배우자” 제안

“인도에 진출해 정부 관련 인프라 사업을 하는데 정서나 문화 차이를 많이 느낍니다. 불합리한 요구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고, 계약서가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토목엔지니어링 업체 관계자)

“인도에서 매출을 내는 유일한 국내 디지털콘텐츠·소프트웨어 기업이지만, 중국기업이 투자한 일부 지분 때문에 인도-중국 간 분쟁 때마다 게임서비스가 금지되는 피해를 입습니다.” (게임업체 관계자)

4일(현지시간) 오전 인도 뉴델리 에어로시티의 한 호텔 회의장.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인도에 진출한 한국기업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선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인도에 진출한 국내 대표기업 지점장들과 사업가들의 입에선 그동안 겪어온 애로사항이 쏟아졌다. 현지 비관세 장벽과 자국산업 보호 통상정책, 소급 입법에 따른 과세 등이 화두가 됐다. 계약 조건 외의 것을 요구하는 관행과 게임서비스에 대한 규제도 언급됐다. 이들은 김 지사가 같은 날 오후 인도의 경제 관련 유력 장관들과 잇달아 만나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요구했다.

김 지사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뒤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인도를 방문 중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4일(현지시간) 뉴델리의 한 호텔에서 인도 진출 한국기업 대표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그는 “35년간 이어온 공직 생활의 첫 커리어는 국제협력이었다”며 “오늘 경제부총리로 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라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인도에서 첫 방문지가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일 만큼 간디를 존경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간디 정신이 인도 민주주의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만큼 독립전쟁과 해방 이후의 ‘변화 지점’이 다른데 인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지사는 특히 인도 정부의 외국기업에 대한 소비세 소급 부과 계획과 현지 업체들이 미국·일본기업과 달리 차별받는 현실 등을 귀담아들었다. 이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단순히 한국기업이라는 이유로 (미국 기업 등과 달리) 규제를 받는다거나 약속받은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며 “인도와 한국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이곳저곳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그간 날 선 공방이 오간 윤석열 정부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도지사로 있는 동안 가장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벌여 대한민국 외교는 용산이 아니라 광교에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인도와 좋은 협력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간담회 말미에 “(인도와) 믿음을 갖고 서로 배우자”고 했다. 이는 ‘서로의 강점을 보완해 시너지를 창출하자’는 뜻으로, 간디가 ‘거룩한 책’으로 부르는 힌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도를 방문 중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3일 오후(현지시간) 뉴델리의 한 호텔에서 인도 경제단체 대표들을 초청해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날 간담회에는 현대자동차와 신한은행, 포스코, 아시아나, GS건설, 롯데정밀화학,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기업과 크래프톤, 제이월드, 유신엔지니어링, 이렌텍, KNJ 로지스틱스, KG 스틸 등의 직원이 참석했다.

김 지사는 전날 오후에도 인도 경제단체 대표 및 기업들인과 간담회를 열어 협력을 다짐했다. 간담회에선 반도체, 바이오 의료, 모빌리티 등 첨단산업부터 스마트 농업, 사회적 경제 분야까지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인도 경제인들은 지적재산권(IP) 분야와 관련해 ‘테크놀로지 서밋’ 개최를 제안했다. 이에 김 지사는 1980년대 중반 한미 무역 마찰 당시 담당 공무원으로서 협상 경험을 언급해 박수를 박았다.

그는 “IP 보호야말로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슈”라며 “과거 경제부총리 재임 시절, 취임 후 첫 파트너는 인도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아룬 제이틀리’ 인도 재무장관과는 휴대전화 번호를 나누고 수시로 연락할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당시 나눈 대화들은 한·인도 간 협력 강화에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인도 경제계 대표들과 나눈 대화도 경기도와 인도의 협력 강화에 탄탄한 기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경기도에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27%가 있고 특히 경제·산업의 심장으로 반도체, 바이오, IT, 첨단모빌리티 등 모든 산업이 몰려있다”며 “경기도와 인도가 경제협력, 수출, 투자, 인적 교류 등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된 친구 관계를 맺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소냐 프라샤 인도전시산업협회장, 아시시 모한 인도산업연합 사무국장, 산토쉬 매튜 인도상의연합회 수석이사, 사리데비 죠티 쿠마 국제혁신기술연맹(GITA) 회장, 수지트 카노리아 카노리아그룹 인프라개발협력부문 사장, 사릴 모한 힌두자그룹 대외협력담당 총괄매니저 등이 참석했다.

뉴델리(인도)=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