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 개발 ‘암흑의 10년’ [만물상]

김홍수 논설위원 2023. 7. 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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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11년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 변화의 시나리오가 시작된다’고 외치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6대 공약을 발표했는데, 1번이 토건 예산 삭감, 5번이 재개발 과속 추진 반대였다. 시장이 되자 그는 “집 많이 지으면 뭐 하나. 99대1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 뿐”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서울 뉴타운 계획을 폐기하고, ‘도시 재생’을 내걸었다. 동네 원형을 유지한 채 각종 공공·편의 시설을 넣어 주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등 52곳이 도시 재생 사업지로 선정됐다. 박 시장은 ‘옥탑방 한 달 살기’ 이벤트까지 벌이며 도시 재생에 열을 올렸다. ‘토목 사업’을 ‘적폐’와 동일시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선풍기 선물을 보내며 응원했지만, 박원순표 도시 재생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도시 재생 1호 창신동에만 900억원이 투입됐지만 공동 화장실은 여전했고, 소방차 출입도 불가능했다. 주민 수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었다.

▶박 시장은 옛 연탄 아궁이 아파트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면서 ‘아파트 한 동 남기기’ 정책도 추진했다. 고층 신축 아파트 사이에 홀로 흉물로 남은 주공 아파트 역시 박 시장이 사라지자 철거된다고 한다. 박 시장은 을지면옥 같은 낡은 건물을 ‘생활유산’으로 남겨야 한다면서 도심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서울이 이러는 사이, 일본 도쿄는 수직 고밀도 재개발을 추진해 도시가 환골탈태했다. 도쿄역 주변, 롯폰기 힐스, 시부야는 개성 넘치는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로 가득 차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꿨다. 도쿄처럼 도시 재생의 글로벌 트렌드는 수직 고밀도 재개발이다. 도시의 밀도가 올라가면 각계각층 도시의 구성원 간 교류가 많아지고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분당, 일산 중 분당의 부동산 가치가 훨씬 높은 것은 들판에 입지한 일산과 달리 분당은 산이 많아 처음부터 고밀도 도시 개발을 했기 때문이다(홍익대 건축과 유현준 교수).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이 많은 파리와 런던도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고밀도 재개발’을 선택하고 있다. 라데팡스는 파리 콩코드 광장~개선문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심축에 자리 잡아 ‘보존’과 ‘개발’ 간 균형을 잘 잡은 도시 개발 모델로 평가받는다. 런던 도크랜드의 경우 낡은 항구를 금융 타운으로 재개발해 금융 산업 경쟁력 제고에 일조했다. 여전히 판자촌 몰골인 세운상가 주변을 둘러본 오세훈 서울시장이 “토목 반대가 ‘암흑의 10년’을 가져왔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럴만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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