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불수리' 난항 부딪힌 징용배상 공탁…새 법정공방 예고
공탁 효과 두고도 "채권 소멸 아냐" "기만적" 공방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강제징용 배상 소송을 매듭짓기 위한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이 의도와 달리 새로운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모양새다.
이를 수용하지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공탁 절차가 법원에서 일부 제동이 걸리면서다.
이번에는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변제공탁이 채권자(강제징용 피해자)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유효한가'라는 생소한 문제를 두고 외교부와 피해자 측이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공탁관은 전날 생존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에 대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의 공탁 신청을 받은 뒤 '불수리' 결정했다. 피해자가 공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점을 근거로 들었다고 한다.
외교부는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불수리 결정을 한 것은 공탁 공무원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것이자 헌법상 보장된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가 제시한 근거는 1997년 10월16일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공탁제도는 공탁공무원의 형식적 심사권, 공탁 사무의 기계적, 형식적인 처리를 전제로 해 운영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판결은 공탁받을 사람(피공탁자)의 특정 여부가 문제 된 사건에서 '공탁 사무의 기본적 성격에 비춰볼 때 피공탁자를 특정할 의무가 공탁자에게 있다'고 밝히는 취지여서 이번 사례와는 다소 결이 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경우와 유사하게 제3자 변제공탁이 문제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2009년 5월28일 '공탁자는 이해관계 있는 제3자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변제공탁을 수리하지 않은 공탁공무원의 처분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다만 이 사건도 채권자가 아닌 채무자의 거부 의사가 문제 됐고 근거 조항도 민법 469조2항이라는 점에서 강제징용 사건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럼에도 공탁공무원이 민법상 공탁 요건의 충족 여부를 판단해 불수리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본 점에서 외교부의 주장과 어긋나는 판단이라 할 수 있다.
공탁법과 대법원 공탁 규칙 역시 공탁관은 일정한 처분을 할 수 있고 여기에는 불수리 결정도 포함된다고 정한다. 이에 불복하면 관할 지방법원에 이의신청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다.
외교부와 피해자 측은 공탁의 효과를 두고도 다른 주장을 펼쳤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날 브리핑에서 "그분(피해자)들이 공탁금을 받으셔야 완전히 채권이 만족이 되는 것"이라며 공탁 자체로 채무가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날 역시 '일본 기업의 채무를 없애주려 공탁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채권 소멸을 위해서 공탁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피해자 측 대리인단은 "공탁이 유효하다는 전제하에 변제공탁을 하게 되면 채권은 소멸하게 된다. 그런데 변제공탁을 하면서 채권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기만적"이라고 반박했다.
민법에 따라 채권은 변제가 제공되는 경우 소멸한다. 변제자가 법원에 갚아야 하는 금전이나 물건 등을 적법하게 공탁하는 경우에도 소멸한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유효한 공탁이라면 공탁되는 즉시 채무자는 채무를 면하게 된다"며 "공탁의 유효성은 다퉈봐야 알겠지만 공탁금 수령과는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와 피해자 측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외교부는 "즉시 이의절차에 착수해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구하겠다"고 예고했다.
재단의 공탁이 유효한지, 나아가 정부가 주도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이 타당한지 여부는 결국 법원에서 결론 날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자 측은 의견서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공탁이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소송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재단 측이기 때문에 피해자 측이 소송에 참가하거나 법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하급심 법원이 재단 측 이의를 받아들이면 공탁은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다. 피해자 측은 다른 법적인 절차를 찾아야 한다.
법원이 공탁 공무원의 불수리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피해자 측의 채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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