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2%대 진입에도 한은 웃지 못한 까닭 [마켓톡톡]
10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 글쎄
한국과 신흥국 경제 상황 달라
부채축소 과제로 남긴 건 실기
21개월 만에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통계청이 이를 발표한 당일 한국은행은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하반기 CPI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비관론을 내놨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해외 투자자들이 신흥국들의 금리 인하에 베팅하고, 우리의 부채축소(디레버리징)가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한은 비관론= 4일 통계청은 6월 CPI 상승률이 2.7%를 기록해 2021년 9월 이후 처음으로 2%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농산물과 석유류 제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4.1% 오르는 데 그쳐 2022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식료품과 에너지 제품을 제외한 CPI는 3.5% 상승해 지난 5월보다 0.4%포인트 하락했다.
현재 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목표치인 2%보다는 여전히 높지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와 비슷한 구조라고 언급한 호주뿐만 아니라 일본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호주와 일본의 5월 CPI 상승률은 각각 5.6%, 3.2%였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오히려 비관론을 들고 나왔다. 6월 CPI가 발표된 4일 오전 한국은행은 '물가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6월 CPI 상승률은 (에너지류의)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해 예상대로 2%대로 둔화했다"며 "물가 상승률은 다시 높아져서 연말까지 3% 안팎에서 오르내릴 것"이라고 비관론을 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더 가깝게 내려온 것은 호재 중 호재다. 그런데도 웃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로 풀이된다.
■ 비관 배경➊ 월가의 독촉=미국 등 해외 투자은행들은 최근 다른 신흥국과 함께 한국도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인도‧브라질과 함께 한국을 투자 유망처로 꼽으며 한국은행이 오는 10월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신흥국들의 기준금리 인하에 베팅하고 있다. 실제로 신흥국들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헝가리는 지난 5월 기준금리를 내렸고, 추가로 더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6회 연속 금리를 동결한 브라질도 곧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경제가 6월 역대 최고 수준의 무역흑자를 내는 등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를 월가에서 언급하는 신흥국들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헝가리의 올해 4월 물가 상승률은 24.0%였고, 기준금리도 10%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우리와 부동산 대출로 인한 가계부채 수준이 유사한 호주도 4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향후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더 매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신흥국들은 갈수록 비둘기파적인 모습을 보인다"며 최근 신흥국 금리 인하에 베팅하고 있는 월가의 행보를 우려했다.
올해 들어서 해외투자자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갈수록 낮아지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앞당길 것이란 전망을 앞다퉈 내놨다. 올해 1월 프리드릭 뉴만 HSBC 아시아 글로벌 리서치 헤드는 블룸버그TV에 출연해 "한국이 경기침체 가능성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이터도 지난 5월 23일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씨티그룹이 그 뒤를 이어 '10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해외투자자들은 5‧6월 두 달 동안 한국 국채 매입에 23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올해 해외투자자들이 매입한 한국 국채 규모가 370억 달러인데, 이 중 3분의 2를 지난 두달간 매입한 것이다. 이는 해외투자자들이 우리의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했다는 방증이다. 블룸버그는 한국 국채 매수세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3일 보도했다.
■ 비관 배경➋ 체질적 한계=한국은행의 비관은 우리 경제의 체질적인 한계인 부채 축소(디레버리징)가 사실상 중장기 과제로 남은 것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6월 12일 한은 창립 73주년 기념사에서 "중장기적 시계에서는 금융 불균형이 재차 누증되지 않도록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창용 총재는 취임 이후 여러 차례 통화정책의 한계를 지적해왔다. 발언의 강도도 점차 세지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4월 신임 총재의 취임사에서 "부채의 지속적인 확대가 자칫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며 "통화정책만으로는 안된다.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25일 이 총재는 "(구조개혁이 안 되는 것을) 재정·통화 단기 정책을 통해서 해결하라고 하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이런 시각의 배경에는 '기준금리 인상'이란 큰칼을 사용하더라도 디레버리징 효과가 적을 수밖에 없는 우리 경제의 체질적 한계가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 통계에는 전세 보증금이 빠져있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가계부채 비율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105.0%이지만, 전세 보증금 1058조원을 합치면 158.6%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이는 전세 보증금을 포함한 이른바 '확대 가계부채'에서 기준금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 부채가 전체의 3분의 1이라는 뜻이다. 단기 통화정책만으로는 디레버리징이 힘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전세 사기 문제는 사실상 '가계부채 구조조정'의 기회였는데, 정부가 이를 "사인 간의 채권, 채무 관계"라고 축소 해석하면서 기회를 놓친 영향도 크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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