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청담고’ 재산이 계급이고 서열임을 왜 노골적으로 보여줄까?

2023. 7. 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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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2020년 4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드라마는 달라졌다. OTT가 콘텐츠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드라마다. 비슷한 시기인 2020년 6월, SBS 금토드라마 ‘편의점 샛별이’가 방송되고 있었지만, 일본 만화의 이질감을 포함해도 전자와 비교하면 소꼽장난 수준이다.

‘인간수업’에서 주인공인 고교생 지수(김동희)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사이버 포주’로 활동한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하자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간수업’의 탈선은 기존 학원물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탈선과 일탈의 강도나 과감성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다. 웨이브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10부작 시리즈물 ‘청담국제고등학교(이하 ‘청담고’)도 ‘인간수업’과 맥이 닿아있다.

연간 학비만 1억원이 드는 ‘청담고’는 지금까지 방송된 학원물중 재산이 계급이고, 서열임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이와 비슷한 기존 학원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 ‘상속자들’ 등이 있다. 여기서는 아무리 물질적인 자랑질을 경쟁적으로 해도, 주인공은 가진 것 없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흙수저인 금잔디(구혜선)와 차은상(박신혜)이다.

하지만 귀족학교임을 자처하는 하이틴 심리 스릴러물 ‘청담고’의 주인공은 한국대 대학생(서울대 같은 학교)이라고 사기를 쳐 부잣집 중딩 나연의 과외선생이 되는데 성공하는 혜인(이은샘)이다.

혜인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명품 가방과 옷으로 가득한 나연의 패션을 자기 것인양 몸에 걸치고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리며 팔로워 수를 늘려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다 혜인은 “인스타 사칭녀를 고발합니다”라는 글이 온라인에 올라오면서 ‘금수저’인 척 하려다 금세 ‘짭수저’가 돼버린다.

이제 순진한 캔디형 주인공으로는 청담 귀족학교의 다이아몬드 수저이자 ‘왕족’인 제나(김예림)와 맞짱은커녕 상대조차 할 수 없다.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청담고’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백제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은 얼마든지 학교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몇몇 대사는 철저하게 부모 재산에 따라 서열이 나눠지며 하극상은 용납하지 않는 ‘극강의 자본주의’일 뿐만 아니라 못 사는 걸 조롱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이 못갖는 걸, 괜히 안갖고 싶은 척 깎아내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부잣집딸 나연이 흙수저 혜인에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물었지. 그렇게 태어난 게 잘못이잖아”(한명그룹 회장 외동딸 제나가 매번 괴롭힘 당하는 민솔에게)

“병원장 딸이면 여기선 간당간당한데”(청담고의 한 학생이 자신의 학교에 오고싶어하는 여중 3년생에게 학교 투어를 시켜주면서 한 말)

기간제 영어교사가 수업시간에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자, 학생이 멋진 영어발음으로 교사 기를 팍팍 눌려주면서 하는 말은 “그거 알아요. 당신 발음 후진 것”이다.

돈이 깡패고, 집안배경이 곧 권력이 되는 여기 청담고에서 백제나는 왕족이나 다름없다. 얼굴도 ‘존예’, 진정한 ‘갓생’이다. 제나는 새 엄마가 될 사람에게 “없는 것들이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라고 말한다. “어디 첩년 따위가 고작 임신 좀 했다고 그 천한 신분 안달라지거든”이라는 대사도 나온다.

제나의 새엄마가 될 사람도 제나에게 “너 싸가지 더 이상 안봐줄테니까 호칭 똑바로 해. 나는 니 남동생 낳아줄 새엄마라고”라고 말한다. 대사가 ‘막장 of 막장’이다.

청담고의 메인빌딩 입구에는 ‘설립에 도움 주신분’들의 성함이 적혀있고 얼마를 기부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많이 낸 사람은 위에, 적게 낸 사람은 아래에 있다. 철저하게 서열화돼 있다. 그 높이가 자신의 ‘서열’이고 ‘주제’이고 ‘신분’임을 알려준다.

주인공인 혜인은 소위 ‘기균충’으로 청담고에 들어왔다. 청담고에서 한 여고생(해인)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현장을 목격하는 바람에 입을 닫는다는 조건으로 청담고 이사장의 특별배려(?)를 받아 한 반에 3명 정도 있는 기균(기회균등전형)으로 청담고에 입학했다.

백제나가 다른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하다. 제나는 잘 살다 망한 오시은에게 “친구도 급이 맞아야 하는 거라고 했지”라고 했고, 혜인에게 배려하며 관심을 보이는 청담고 이사장 아들 서도언에게는 “니가 가난한 애 페티시가 있는 거지”라고 말한다.

혜인이 이런 청담고를 다니면서 얻은 결론은 기균충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상황을 바꿀려고 할까?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못사는 애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떨어진 김해인은 알고보니 동영상이 유출돼 협박받고 있었다. 주인공 혜인도 사진알바를 하다 500만원을 더 준다는 덕만의 말에 넘어가 약점이 잡혀있다.

제나가 혜인에게 하는 말중에 “너 같은 애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그 천한 신분에서 절대 못벗어나. 그러니까 제발 주제파악좀 해”라는 말이 있다. 주제파악은 돈으로 한다. 이게 ‘청담국제고등학교’의 결론이라면 너무 서글프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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