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풍경] 사이키델릭 치료제 꿈, 80년 만에 현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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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스위스의 제약회사 산도스의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은 한 분자를 합성하고 퇴근해 집 소파에서 쉬다가 환상적인 이미지가 펼쳐지는 꿈같은 상태를 겪었다.
실험 중 피부에 묻은 가루가 몸에 흡수된 결과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호프만은 다음날 당시 과학자들이 종종 그랬듯이 자신을 실험동물 삼아 투여했고 세상이 새로 창조되는 듯한 놀라운 체험을 통해 이 약물이 정신의학 분야에서 큰 잠재력이 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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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풍경]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1943년 스위스의 제약회사 산도스의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은 한 분자를 합성하고 퇴근해 집 소파에서 쉬다가 환상적인 이미지가 펼쳐지는 꿈같은 상태를 겪었다. 실험 중 피부에 묻은 가루가 몸에 흡수된 결과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호프만은 다음날 당시 과학자들이 종종 그랬듯이 자신을 실험동물 삼아 투여했고 세상이 새로 창조되는 듯한 놀라운 체험을 통해 이 약물이 정신의학 분야에서 큰 잠재력이 있음을 직감했다. 오늘날 강력한 마약으로 인식되는 엘에스디(LSD)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10여년 뒤 호프만은 멕시코 마자텍 인디언이 도취 상태에 이르기 위해 먹는다는 광대버섯 사일로사이브 견본을 받았고 유효성분을 분리해 사일로사이빈(실로시빈·실로사이빈)으로 명명했다. 흥미롭게도 사일로사이빈의 구조는 엘에스디와 꽤 비슷했다. 이들 분자처럼 인간의 정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사이키델릭이라고 부르는데, 환각을 부르는 점을 강조해 환각제라고도 한다.
산도스는 엘에스디를 요청하는 연구자와 의사들에게 나눠 줬다.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된 많은 임상시험 결과 엘에스디는 우울증, 약물 중독 등 여러 정신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기적의 신약’으로 불렸다. 그러나 미국에서 일반인들이 여흥으로 쓰면서 부작용이 속출했고 1970년 미국 정부는 엘에스디와 사일로사이빈을 1급 마약으로 지정했고 한국 등 다른 나라들도 이를 따르며 연구가 중단됐다.
2000년대 들어 우울증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질환으로 부상하고 기존 치료제의 한계가 분명해지자 몇몇 나라의 보건 당국은 연구자들의 끈질긴 요청에 사이키델릭 임상시험을 허가했고 뚜렷한 효과가 나오면서 그 뒤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이번달부터 세계 최초로 사일로사이빈과 엠디엠에이(MDMA, 흔히 ‘엑스터시’로 불린다)를 각각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제로 쓸 수 있게 승인했다. 호프만이 사이키델릭의 가능성을 알아본 뒤 80년 만에 정식 의학 치료제 목록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다만 엘에스디는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워낙 뿌리 깊어 굳이 포함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일로사이빈은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에게 즉각적인 증상 개선 효과를 보인다. 엠디엠에이도 투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 과반수가 완치 판정을 받을 정도로 효과가 크다. 더 놀라운 건 오랜 기간 반복 투여하는 기존 치료제와 달리 사이키델릭은 한두번 투약으로 수개월 또는 수년 효과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사이키델릭의 약효 메커니즘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난 2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사이키델릭 분자는 혈액을 따라 뇌에 들어가 뉴런(신경세포)의 특정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에 작용해 신경 자극을 중계하는 가지돌기의 성장을 촉진해 신경가소성이 커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사고가 유연해져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전체 우울증의 20%를 차지하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는 자살률이 평균의 수십배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에서도 사이키델릭 치료제 임상시험을 적극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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