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지방음악축제의 힘, 그리고 감동
신록의 계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날씨는 한여름이 무색할 정도로 뜨겁습니다. 저는 출근하기 전에 꼭 일기예보를 보는 습관이 있는데 앞으로는 기상청에서 '체감온도'라는 걸 발표한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체감온도는 습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습도가 30~40퍼센트 이하일 때는 실제 기온보다 조금 낮게 느껴지지만, 습도가 60~70퍼센트 이상일 때는 2~4도 더 높게 느낀다고 합니다.
얼마 전 올해로 8회를 맞은 여수에코국제음악제(6.16~18, GS칼텍스 예울마루)를 참관했는데 여수 시민들이 클래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열정의 체감온도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끌어 오는 과정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는 얘기를 관계자분들께 들었습니다. 음악제 첫 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30만 여수 인구 중 단 100명도 공연장으로 모으기가 힘들었지만, 매년 조금씩 늘어나 지금은 객석을 가득 채우는 성과를 내고 있으니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첼리스트 김민지 교수(서울대)가 예술감독을 맡은 올해는 더욱 그렇더군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김덕우, 대니구와 피아니스트 문지영, 원재연 등 서울에서도 모이기 힘든 유명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 서서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었고, 공연장을 메운 관객들은 또 그들의 연주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흐뭇한 풍경이었습니다.
이런 성과를 내기 위해 예술감독은 물론, 여수에코음악제를 뒷바라지하는 범민문화재단의 정희선 이사장 등 집행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집행부는 프로그램 선정과 연주자 섭외까지 철저하게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중들과의 더 많은 교감을 위해 연주를 맡은 음악가가 직접 해설을 맡아 간단한 곡 소개를 곁들이고, 악장과 악장 사이에서 조심해야 하는 점(박수)도 재치 있게 알려주어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프로그램도 가급적 청중이 제목이나 분위기를 접해본 적이 있는 작품들 위주로 선정했는데요, 사실 연주자들은 이런 곡들의 연주를 기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대중적인 곡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청중이 다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꼼꼼한 기획과 배려는 음악회 현장에서 관객들의 화답과 큰 박수 소리로 돌아왔습니다. 여수에코음악제측은 그동안 관객 수를 늘리기 위해 많은 신도를 가진 교회나(여수엔 교회가 무려 800개나 있다고 하네요), 단체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공연장에 오기를 설득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노력들이 서서히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다녀본 지역의 음악제들은 각각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작곡가 윤이상을 기념하여 설립된 통영국제음악제(대표 이용민, 예술감독 진은숙)는 올해 창립 21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음악 축제 및 콩쿠르로 이미 성장했고, 대도시인데도 클래식음악의 볼모지나 다름 없었던 부산에 대규모 교향악축제 시대를 열었던 부산클래식음악제(감독 오충근)와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에 어울리는 실내악 연주로 낭만을 살렸던 포항음악제(감독 박유신), 옛고을의 전통을 살려 엘리트 연주인들이 모였던 전주비바체음악제(감독 최은식) 등에서도 모두들 고향을 사랑하는 음악인들의 헌신과 열정이 돋보였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짧거나 예산이 적은 음악제는 음악감독들이 무보수로 일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동료및 후배 음악가들 역시 차비 수준의 열정 페이만 받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저는 그들의 노력과 헌신이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문화의 수도권 집중현상에 대해 우려를 합니다. 지방 소도시에는 제대로 된 공연장이 드문 것은 물론, 설사 있다 하더라도 공연할 콘텐츠가 없어 일년내내 놀고 있는 공연장도 꽤 많다고 합니다. 지방음악축제는 이러한 현실들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 중 하나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문화 혜택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각 지방 음악제에 주민들이 더 많은 관심과 자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해당지역의 관계기관 및 종사자들의 성심어린 지원과 성원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수도권보다 더 유명한 지방음악축제가 얼마나 많은지요? 지역 출신 작곡가나 유명 연주인들을 기리는 그런 축제들은 해당 지역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사실 큰 변화는 이렇게 소소하고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지방음악제 관계자들께 '객석'이 힘과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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