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자기 머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악귀>를 보면 오싹해진다. 씩씩하고 평범한 20대 여성이 악귀에 씌어 섬뜩한 표정으로 씩 웃는 것도 무섭지만 그 뒤에 들러붙은 산발 귀신 그림자는 훨씬 더 공포스럽다. <전설의 고향> 같은 납량물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대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 귀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얌전하고 차분한 머리카락보다는 메두사처럼 제각각 움직이는 기다란 머리카락이 공포를 더욱 자극하는 것 같다.
왜 귀신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여자가 많을까. 남자 귀신도 머리를 풀고 나올까. 귀신에게도 성별이 있을까. 귀신을 만나본 적 없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입장에서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여자 귀신의 긴 머리카락이 실체라기보다는 특정 시공간의 문화를 공유한 인간 관념의 투영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머리카락은 단순한 두피의 털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신체 문화의 일부다.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두발만큼 사회적 규제가 촘촘하게 작동하는 신체 부위는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1895년 고종 32년 김홍집 내각이 성인 남자의 상투를 자르라고 내린 단발령일 것이다. 단발이 양생에 유익하고 일하는 데 편하다는 이유였지만 백성에겐 이런 갑작스러운 근대화가 유교적인 전통과 자존심을 훼손한 문화 충격이었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른 고종을 비롯,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중시하던 남성 대다수가 이를 심각한 박해로 인식했지만 단발령이 철회된 뒤에도 남자의 짧은 머리는 빠르게 유행을 탔다.
1920년대 신여성은 ‘모단(毛斷)걸’ 또는 ‘단발랑’으로 불렸다. ‘단발랑’이란 호칭엔 성적으로 문란하고 사치와 방종이 심하다는 편견이 들씌워졌다. 1920년대 초 가장 유명한 단발랑은 경성 화류계를 주름잡던 기생 강향란이었다. 그는 남자에게 배신당해 자살을 기도했다가 구조된 뒤 “남자와 똑같이 당당하게 살아야겠다”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남장을 했다. 이후 신문기자로 활약하고 여성운동을 했으며 영화배우로도 일한다. 여성해방운동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인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는 과거와 단절하고 노예적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발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어김없이 문란하다는 입방아가 따라붙었다.
근대적인 의복 개량에 견줘 여성의 단발에 대한 남성의 반발은 훨씬 컸다. 가부장과 남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소설가 염상섭, 아동문학가 방정환을 포함한 모던보이 다수가 여자 단발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여성 단발은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1926년 1월 서울의 동광청년회는 ‘여자단발 가부토론’을 기획했다. 행사가 열린 서울 종로 중앙청년회관은 북새통을 이뤘고 찬성쪽 인물이 등장하지 않자 청중이 흥분하는 등 가부 결정은 못한 채 토론회는 산회하고 말았다. 1929년 1월 잡지 <별건곤>은 남녀 연사가 모두 참여하는 여자 단발 가부토론 기사를 실었다. 반대하는 남성의 주장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니, 여성 단발에 대한 당시 반발을 짐작할 수 있다. ‘단발한 여자는 원숭이가 된다’, ‘단발을 하면 대머리가 쉽게 된다’는 등의 이상한 과학 이론을 미국발로 소개했던 국내 신문들도 여성 단발에 대한 반감 조장에 한몫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여성의 노동력도 모자라 긴 머리카락까지 착취해 국가 자원으로 도구화했다. 1960년대 정부가 외국 차관을 갚기 위해 수출 기반 마련에 나섰고 대표 품목으로 가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여학생들 머리카락을 7㎝ 더 길러 가발 수출 자원으로 삼겠다고 각 학교에 공문까지 내려보내자 “내 딸 머리카락이 앙고라냐”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나왔다. 여자들을 꾀어 머리카락을 잘라 가거나 쌀을 사려고 잘라 놓은 머리카락을 훔쳐가는 신종강도가 극성을 부렸다. 어린 여자아이를 유괴해 머리카락을 자르다 아이가 울자 살해한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독재와 빈곤 시대의 여성 머리털 잔혹사다.
머리카락은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고 권력을 내면화시켜 순종적인 신체를 만드는 규율권력이 작동하는 곳이다. 감옥에 수감된 수형자는 정해진 머리스타일 지침을 따라야 한다. 군인은 대체로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데 2021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간부와 병사의 두발 규정이 다른 것은 차별이라며 제도를 개선하라는 결정문을 내놨다. 청년과 학생들의 머리 또한 오랫동안 통제의 대상이었다. 1970년대 남성 장발 단속이 이뤄지던 시절 장발은 저항을 상징했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 학생 두발 자율화를 시행했지만, 2000년대 다시금 고교생들의 두발규제가 시행되면서 반대운동이 극에 달한다. 그 뒤에도 정치적인 기울기에 따라 고교생들의 두발단속과 자율화 조치가 번갈아 오갔고 머리카락 길이와 색깔을 허용하는 수준도 달라졌다.
여성의 머리카락은 특히 가부장이나 종교 전통에서 통제의 대상이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배우자나 딸의 머리카락을 밀어버리는 일은 가부장의 오래된 폭력 가운데 하나였다. 유대인 정통 보수파들은 여성의 머리카락이 성적 유혹을 상징한다며 기혼 여성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슬람권에서 히잡을 쓰거나 가톨릭에서 미사포를 쓰게 하는 것 또한 여성의 머리카락을 단속하는 제도적 규제였다. 히잡이 이슬람 여성의 자부심과 주체성을 상징하고 패션의 도구가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2022년 이란 반히잡시위 이후엔 여성의 히잡을 인권 탄압으로 보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히잡이 패션의 도구가 되건 여성차별의 제도적 억압이 되건 여성의 머리카락은 자본과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신체 구성물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머리카락을 연구한 대표적인 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는 긴 머리가 절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왕자를 홀리는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 정성스레 빗질하며 어부들을 유혹하는 로렐라이, 아폴론이 애태우던 다프네의 빛나는 머리카락도 여성성의 표상이 된다. 메두사는 아름답고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이었으나 포세이돈에게 강간 피해를 입고 아테나에 의해 괴물로 변한다. 프로이트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이 거세된 여성 성기인 동시에 상징적 남근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메두사의 얼굴이 이빨 달린 질의 이미지라고 정반대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양쪽 의견 모두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위협하는 신체인 동시에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 된 까닭을 보여준다.
유행을 선도하는 연예인을 제외하고 머리카락을 관리하는 직종 중 대표적인 사례는 정치인이나 그 배우자일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머리는 메두사의 머리에 비유되었고, 국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이 단연 정치적인 의제였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가라앉던 7시간 중 올림머리를 하느라 90분을 썼다. 2017년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질문을 하다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하얀 머리가 멋있다”며 공식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외모 언급으로 일관해 입방아에 올랐다. 인터넷에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헤어스타일과 헤어라인을 두고 비난하는 글과 사진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의 머리카락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유통되고 정치적으로도 재해석된다.
리치는 짧은 머리가 순결과 관련된다고 봤지만, 다르게 풀이될 때도 있다. 양궁선수 안산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로 3관왕을 차지했을 때 찬사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의 짧은 헤어스타일이 도마 위에 올라 ‘페미니스트’ 또는 ‘탈코르셋’으로 의미화되어 비난이 쏟아졌다. 1920년대 ‘단발랑’에 열띤 비난이 쏟아졌듯, 안산의 쇼트커트(숏컷) 역시 사회적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학교에서는 두발 규제를 하면서 숏컷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보았다. 때로 여성의 긴 머리는 유혹적이고 짧은 머리는 도전적이다. 남성의 긴 머리는 퇴폐적이고 지나치게 짧은 머리는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두발은 과연 어떠해야 ‘정상’인가?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주인공 주란의 남편은 배우자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빗겨주면서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한다. 싸움에서 머리채를 잡히면 진다. 저항을 위해 삭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때 머리카락은 신념의 표현이다. 머리채를 잡힐 것인가, 잡을 것인가, 내가 내 머리를 깎을 것인가, 남이 내 머리를 깎을 것인가. 머리카락은 권력의 표현이다. 남의 머리카락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는 권력자다. 자기 머리카락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 그가 바로 힘 있는 자다. 그는 종다리처럼 자유롭다.
이유진 |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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