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요즘 세상에 철근을 어떻게 빼나요

김남석 2023. 7. 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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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건설 '주차장 붕괴'서 드러나
현장관리 좋아졌지만 허점 여전
감리까지 한통속인 경우도 있어
김남석 금융부동산부 기자

한 유명 건축가가 '철근 빼먹기'를 걱정하는 영상을 SNS에 게재한 적이 있다. GS건설의 주차장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계산법이 정확해지면서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설계가 가능해 졌어요. 기둥이 10개 필요한 건물에 예전에는 20개의 기둥을 세웠다면 지금은 13개를 넣는 정도까지 오차 한계가 줄어든 거죠."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경고를 덧붙였다. 이유는 우리나라 공사현장의 '철근 빼먹기' 때문이었다. 계산은 정확한데 감리가 제대로 안 되면 건물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인천 주차장 붕괴사고 취재를 시작할 때 "요즘 세상에 철근을 빼는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심지어 시공사는 국내 1, 2위를 다투는 건설사였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등 대형 사고를 거치며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안전의식도 많이 올라왔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설계사부터 현장 소장, 감리, 현장직원을 취재하면서 들은 내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였다. 설계 기술과 감리의 전문성, 현장관리 모두 발전했지만 철근을 빼돌리는 행위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GS건설뿐 아니라 전국 모든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설계 과정의 허점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사고 현장의 천장을 떠받치는 무량판의 전체 기둥 399개 중 70%인 284곳에서 보강철근이 빠졌다.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시공사인 GS건설, 설계사무소 측이 설계를 변경하면서 빠졌다.

현직 설계사에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묻자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초 기본설계에서 안전 지수를 1.2~1.3배로 잡아도 발주처와 시공사가 시공 편의성과 비용 등을 고려해 설계를 변경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최초 설계에 들어간 철근 10개 중 1~2개가 날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변경설계 역시 설계 전문가가 투입되기 때문에 안전지수를 무작정 줄이지는 않는다. 다만 처음 설계에서 잡았던 여유는 사라질 수 있다.

설계 다음은 발주다. 설계를 보고 필요한 만큼의 철근만 발주하면 되는 간단한 과정에서도 철근이 사라질 수 있다. "발주는 다 하죠, 근데 발주한 철근이 다 들어오는지는 다른 문제." 한 현장 관계자의 말이다.

발주량을 줄일 경우 회계처리 과정에서 바로 티가 난다. 하지만 주문한 100t의 철근 중 90t만 들어온다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철근 10t 만큼의 돈은 페이백, 백마진 등으로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설계와 발주를 거치면서 이미 20%의 철근이 날아갔다. 다음은 시공 현장이다. 공사 현장에는 수십, 수백개의 하청업체가 들어온다. 현장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하지만 허점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GS건설은 붕괴사고 1주일 후 지붕층 전체 700여곳 중 30여곳에서 전단보강근이 누락됐다고 밝혔다. 30년 이상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철근부문 현장직에게 '철근 누락'을 물었다. 그는 "에이 그거가지고 무너질거였으면 대한민국 아파트 다 무너졌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30곳이 아닌 기둥 70%에서 보강철근이 빠진 것이 확인된 만큼 그의 말은 어느정도 사실로 판명됐다. 다만, 아직까지 현장에서 철근 누락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면에서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는 현장에서 철근이 빠지는 경우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시공자의 숙련도다. 철근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오차가 생기고 수천개의 철근에서 발생하는 오차로 인해 어느정도 누락은 불가피하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고의 누락'이다. 현장 직원들이 '철근 몇개 쯤'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빼돌려 고물상에 판매하는 행위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감독해야 하는 감리에게는 이런 누락분을 미리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초음파 등의 장비를 통해 이미 시공이 끝난 곳에서도 철근 누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감리는 매뉴얼에 따라 주요 부분만 장비를 통해 확인한다. 현장 관계자들은 이를 미리 알고 문제가 되지 않을만한 부분에서 철근을 빼돌린다. 혹은 감리까지 한통속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요즘 세상에도 철근 빼돌리기는 가능해 보였다. 이미 사고가 발생했지만, 지금이라도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철근 누락으로 '순살자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GS건설뿐 아니라 건설업계 전체가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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