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숙련공 1명 쓰려면 내국인 5명 뽑아라…꽉 막힌 '비자 쿼터'

이정선/최형창 2023. 7. 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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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외국인 고용정책
(2) 현실 동떨어진 인력 할당제
국내 전문인력 채용 어려워
복잡한 체류기준이 中企 발목
중소기업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수요는 늘고 있지만 까다롭고 복잡한 외국인 체류자격 기준 탓에 인력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에 취업하고자 지난달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한경DB


부품소재 관련 중소기업 A사는 프랑스 출신 금속·재료공학 전공자를 채용하려고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이 외국인 근로자는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취업비자(E7) 발급을 거부해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국인 고용 보호 규정(20%룰)에 따라 금속·재료공학 전공자 한 명을 뽑으려면 국내 관련 전공자 다섯 명을 더 채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중소기업 여건상 국내 전문가를 채용하기 너무 어려워 외국인 인력이라도 데려오겠다는데 현실성 없는 취업비자 규정에 가로막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외국인 근로자 수요는 늘고 있지만 까다롭고 복잡한 외국인 체류자격 기준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단순 업무를 위해 필요한 E9(비전문 취업) 비자는 물론 숙련·전문인력에게 발급해주는 E7(특정 활동) 비자도 받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 쿼터 턱없이 부족

중소기업계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는 것은 외국인 근로자 쿼터 확대다. 올해 E9 비자는 총 11만 명이 배정됐다. 제조업 7만5000명, 농축산업 1만4000명 등을 합친 수다. 지난해(6만9000명)보다는 늘었지만 기업들은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조사한 외국인력 고용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1000개 업체 중 50.4%가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추가로 필요한 인력은 업체당 평균 5.4명 선이었다.

용접, 주물, 도금 등 작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뿌리기업의 인력난이 특히 심하다. 부산 녹산산업단지에 몰려 있는 12개 표면처리(도금) 업체의 외국인 근로자 비율은 90% 수준이다. 이오선 부산청정표면처리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국내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워 외국인 근로자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현안”이라고 했다.

제조업 내에선 외국인 근로자 확보를 위한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수주 호황을 맞은 조선업에 5000명을 정부가 우선 할당하면서 다른 제조업종에 돌아갈 인력이 그만큼 줄었다. 이기중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할 때 연초에 쿼터 물량을 정하는 범위에서만 운용하는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경기 변동과 업종, 지역 수요를 상시 분석하는 유연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체류 기간이 제한된 E9 비자보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숙련기능인력 비자로 전환하는 절차도 까다로워 숙련공 채용이 절실한 중소기업계의 불만이 높다. E9 외국인 근로자가 E7-4 비자(E7의 한 종류)로 전환하려면 연간소득 등을 고려한 ‘산업기여가치’와 자격증 소지 여부 및 기량 검증 등을 따지는 ‘미래기여가치’ 분야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또 나이가 어릴수록, 한국어 능력이 좋을수록 가점이 높다. 이 밖에 국내에서 정기적금을 2년 이상 드는 등 갖춰야 할 조건이 즐비하다. 사실상 전환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군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시화산단의 한 제조업체 사장은 “오래 근무한 숙련공이 E7-4 비자 전환 대상인데 나이가 적을수록 가점이 높다는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성실한 외국인 근로자를 장기 고용하고 싶어도 규제에 묶여 할 수 없는 처지”라고 꼬집었다.

법무부가 지난달 28일 산업현장의 숙련기능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E7 비자 쿼터를 지난해 2000명에서 올해 3만 명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런 이유로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취업 비자 발급 문턱 낮춰야

현재 D2 비자를 받고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 입국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D2 비자는 주중 30시간 이내의 시간제 취업 외에는 불가능하다. 2021년 기준 국내 거주 외국 유학생(2만427명, 2016년 입국) 가운데 E7 비자로 전환해 취업한 인력은 596명(2.9%)에 불과했다. 비자 전환 요건이 까다로워 대부분 유학생이 한국의 생산가능인력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인력 미스매치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이 손쉽게 취업하도록 비자 관련 규제를 대폭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최형창 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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