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연습이 손맛을 만든다
서울 종로1가에 있는 음식점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고입 재수 시절 때다. 물 퍼 나르고 쓰레기 버리고, 그릇 닦고 바닥 청소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주방 일 배우는 이들에겐 가혹한 환경이지만, 막일하는 주방 막내에겐 배불리 먹는 밥만큼이나 기분 좋은 곳이었다. 마지막 주문받은 음식이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손님상에 나갈 즈음에 서울에 일 보러 온 아버지가 음식점에 예고 없이 들렀다. 마침 그 시간에 한 달 전에 예고된 새 주방장을 뽑는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에는 두 보조주방장이 응시했다. 과제는 콩나물국을 정해진 시간에 끓여내는 거였다. 제시한 재료는 콩나물과 소금 그리고 물, 세 가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는 주방장의 시작 신호에 맞춰 음식을 장만했다. 둘만 바삐 움직이고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정지한 긴장된 순간이었다. 두 응시생의 음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방장 앞에 놓이자 고개를 다시 끄덕이는 신호에 따라 경쟁이 끝났다. 주방장이 콩나물국을 두 번 번갈아 맛보고 난 뒤 그중 나이가 더 든 남(南)씨 성을 가진 보조에게 칼을 내주면서 시험은 끝났다.
주방장을 만난 아버지는 “철없는 아이를 맡아줘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호되게 야단쳐주세요”라고 부탁하며 인사했다. 광화문을 거쳐 현저동 집까지 걸어올 때 시험을 모두 지켜본 아버지가 “나는 남 씨가 이길 줄 알았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소금을 볶았다. 그는 한 번에 소금을 집어넣는데 다른 응시자는 두 번 나눠 넣더라. 거기서 실력 차가 나겠구나 했다”라면서 “사람 기억 중에 맛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래간다. 남 씨는 주방장의 맛을 그려낸 거다. 아마 지금 다시 해도 집어넣는 소금의 양이 같을 거다. 그건 오로지 맹렬한 연습 덕분이다. 연습만이 손맛을 만든다”라고 했다.
군 재활병원에서 조리법을 익혔다는 아버지는 소금국을 예로 들어 설명을 이었다. 소금국은 소금만 넣어 끓인 국이다. 간이 심심하고 담백해 여름철 해장국으로 좋다. 조리법에 따라 열한 가지 맛을 낸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끓인 맛, 찬물에 끓인 맛, 소금을 볶아 끓인 맛, 한소끔 끓인 물에 소금을 넣고 끓인 맛 등이 모두 맛이 다르다. 그 어느 조리법이나 소금의 양이 맛을 좌우한다. 재료 선도가 우선이지만, 맛은 소금이 낸다. 양을 조절하는 게 손맛이다. 아버지는 “손맛은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손맛은 단순히 조리법이 아니라, 요리사의 재능과 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손맛이 좋은 음식은 재료의 맛을 잘 살려내고, 그 사람만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라고 보충했다.
그날도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절차탁마(切磋琢磨)’다. 옥 가공을 말한다. 옥 원석을 모양대로 자르는 절. 필요 없는 부분을 줄로 없애는 차, 끌로 쪼아 원하는 모양대로 만드는 탁, 윤이 나도록 숫돌로 갈고 닦는 게 마다. 학문을 닦고 덕행 수양을 비유한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편(淇澳篇)의 시구에서 유래했다. “저 기수 강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원래 군자를 칭송한 말이다. 학문과 인격을 끊임없이 갈고닦아 겉모습까지 완성된 것을 푸른 대나무에 빗댄 말이다. 공자 제자 자공이 이 말을 끌어와 “군자의 인격도 예술품을 만들 듯 이렇게 다듬어가야 한다”라는 뜻으로 사용해 스승에게 크게 칭찬받았다.
아버지는 “양념만 듬뿍 넣어 주재료가 무슨 맛인지를 없애버린 음식은 음식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절차탁마가 조리에도 의미를 두는 성어라면서 “재료의 본래 맛을 살려내 음식 전체의 풍미를 더 해주는 손맛은 오직 피나는 연습에서 온다. 세상의 모든 일을 요리하는 탄탄한 손맛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연습은 인내심이 밑천이다. 인내심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서둘러 손주에게도 물려줘야 할 덕성이다. 인내심을 길러줘야 손주의 손맛을 기대할 수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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