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정책과 타이밍

2023. 7. 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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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인도네시아를 잠시 방문하고 돌아왔다. 2억8000만명에 육박하는 인구 대국인 이 나라는 잠재적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교류가 증가하고 있는 국가이다. 최근 수도를 현재 1억5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자바섬 자카르타에서 칼리만탄섬(보르네오) 누산타라로 옮기려 하기 때문에 이미 세종시의 경험을 축적한 우리를 보는 시각이 남달랐다. 대통령의 상호 방문은 물론 교류(대학의 교류 포함)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교통 전문가로서 필자의 눈에 비친 인도네시아의 현재 모습은 30년이란 세월이 가져다주어야 할 그런 예상과는 달리 예전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 후텁지근한 날씨, 꽉 막히는 간선도로 등은 여전히 나를 압도하였다. 다만 바닥면적이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판매시설과 호텔 건물이 더 생겨나고 현대화된 것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더 요구하였다. 혼잡 시 서울시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는 이곳에선 통상 2시간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하고, 151㎞ 떨어져 있는 반둥시를 자카르타에서 가는 경우 4시간 이상 걸리는 바, 출발 전 구글맵 등을 지도로 활용하여 시간 계획을 수립했던 우리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고 다음 일정을 정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점심을 거를 수밖에 없었다.

토지 이용 고도화에도 불구하고 뒤처진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인해 악화된 교통 상황은 자카르타에 대한 첫인상을 부정적으로 느끼게 했고, 갈 때 잠시 들렀던 싱가포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비록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할지라도 오토바이 숫자로 대변되는 도시의 혼란스러움과 교통 체증은 지하철 개통과 투자 및 향후의 확장 계획을 비웃는 듯하다. 그럼 왜? 지하철을 개통해도 많이 이용하지 않는 걸까? 왜 폭염 속에서 오토바이로 여전히 질주하는 걸까? 알다시피 오토바이는 경유값이 어느 정도 안정된 나라에서 소위 대중교통의 한계로 지적되는 퍼스트마일 라스트마일 문제가 없는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배달 등에서 많이 이용하는 편이고 일반 국민은 통근용이나 통행 목적으로 많이 활용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럼 거꾸로 우리의 경우 왜 오토바이가 인도네시아는 물론, 태국, 대만 동남아 등의 나라에서와 같이 사용되지 않았던 걸까? 그 이유는 경제 발전 단계에서 선도적으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보급하여 이러한 수요를 쾌적한 지하철·버스 환경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나라 '교통 정책의 타이밍'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찍이 정부에서 추진한 지하철을 기반으로 하는 철도 대중교통망을 매우 시의적절하게 보급한 부분이 특히 주요하였다. 한국의 서울·대도시 지하철 운영은 현재 세계적 수준이다. 이렇게 투자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교통시설 특별회계법의 시간적 타이밍이 절묘했다. 교통시설특별회계는 1989년부터 시행된 도로특별시설회계를 1993년에 포괄적 교통시설(도로는 물론, 철도·항만·항공·교통 체계)에 대한 투자를 전담하기 위한 별도의 돈주머니로 생각하면 된다.

유사한 타이밍의 성공 사례로 우리나라의 의료 제도도 있다. 현재 각종 사회적 문제가 존재한다. 출산 정책과 교육 정책 등 사회적 비용과 연결된 제반 정부 정책에는 정권과 무관하게 한결같이 투자되어온 교통시설 정책처럼 타이밍을 맞추어 잘 설계되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때 장기적 측면에서 효과는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다. 각각의 문제 영역에서 정부 정책의 절묘한 타이밍을 기대해 본다.

[최기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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