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제정책]⑩ 물가 잡았다 판단한 정부, ‘경기 부양’에 초점…문제는 ‘총알’
규제 풀고 세제 지원…단 재정 지원은 ‘…'
세수 펑크 등 부족한 재정 여건 반영했다는 평가 나와
‘물가는 잡았다. 이제는 경기 부양이다.’
윤석열 정부가 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첫 화두로 ‘경제 활력 제고’를 꼽았다. 작년말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핵심 과제로 ‘거시경제 안정 관리’와 ‘민생경제 회복지원’을 제시하며 ‘안정’에 방점을 뒀다면, 하반기에는 경기 부양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다만 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대규모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등 재정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경기 부양 정책을 구사할 수 없는 정부의 고민이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 규제 완화·세제 지원으로 경제 활력 제고…재정 부족한 정부의 ‘수’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을 ‘경제 활력 제고’, ‘민생 경제 안정’, ‘경제 체질 개선’ 등 3대 중점 과제에 중장기적 과제를 다룬 ‘미래대비 기반 확충’까지 포함한 ‘3+1′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자유시장 경제를 복원하고, 글로벌 선도국가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게 윤정부 경제팀의 구상이다. 이전 문재인정부가 재정 투입을 기반으로한 사회적 경제를 지향했던 것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윤석열정부의 경제 정책 슬로건인 ‘민간 주도 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경기 부양 방식도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인프라를 건설하는 정부 주도 노선에서 벗어나 민간의 투자를 제한하는 규제와 애로를 해소해 기업이 이끌어가는 모델로 구상했다.
이러한 정부 의지는 수출·투자 촉진 분야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기업의 투자 수요가 쪼그라든 상황에서 기업이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는 투자 자금 공급을 확대하고, 세액공제를 늘려 세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했다.
국가전략기술과 시설 세액공제 범위를 확대하고, 기업의 설비투자금액 중 일부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의 활용도도 높일 방침이다. 여기에 수출기업이 선호하는 항만배후단지에 입주할 수 있는 업종 규제와 임대 면적 제한도 완화해 보다 많은 기업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수출 촉진을 위해선 ‘정상 세일즈 외교’를 통해 국내 기업의 수주 기회를 늘리고, 대형 해외수주가 실제 수출로 원활히 이어질 수 있도록 금융·세제 시스템을 보완할 예정이다.
다만 이러한 정부 정책이 실제 수출·투자 촉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물론 해외 주요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 투자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일부 세제 혜택 만으로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요국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낮추긴 어려워 보인다”면서 “고금리 상황은 기업의 투자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그렇다고 대규모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지금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지출을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준비하면서 상당한 딜레마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은 엿보이지만 이를 타개할 정책적 수단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라면서 “재정 지출을 늘리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세수가 부족해 재정을 쓸 여력도 없다. 그렇다고 부족한 세수를 채우려 조세집행 강도를 높이면 경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어 정부로서도 고민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호용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수 부족으로 예산 재구조화가 이뤄지면서 재정의 역할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 활력을 제고하려는 이번 대책이 부처 및 정책 간 엇박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 역전세난 해소·주거비 부담 완화 정책 ‘긍정 평가’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 의지를 반영한 또다른 분야로는 부동산이 꼽힌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보증금 차액에 대한 반환 목적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임대사업자에 대해선 임대소득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RTI를 하향하고, 개인 임대인에 대해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신 DTI(총부채상환비율) 60%를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작년 수준(60%)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및 신혼부부에 대해선 주택 구입·전세자금을 추가 공급하고, 신혼부부 대상 주택 구입 특례대출 소득 요건도 완화했다.
정부의 역전세난 대책과 관련해선 시장상황 변화로 발생한 역전세 현상을 정책으로 모두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시장 안정성을 유지한 채 대출을 조금 더 받으면 보증금 반환이 가능한 집주인에게 방점을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연구원 연구위원은 “DTI 60% 적용 조치는 역전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며 “대출을 조금 더 받으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집주인에겐 도움이 되겠지만,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임대인은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게 방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작년 수준(60%)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은 현실적”이라며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를 추진하는 정부로선 종부세를 늘리거나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것보다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라고 했다.
청년·신혼부부에 대한 주거 지원 강화에 대해서도 “주택 수요자에게 긍정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 국민 체감 정책 ‘부족하다’ 지적도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는 이번 경제정책방향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저성장기 서민 가구 부담을 줄여주는 복지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 등이 이유로 꼽힌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관련한 수산 관련 대책이 전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률 전망이 1.6%에서 1.4%로 떨어지게 되면 서민과 중산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며 “이러한 취약계층을 챙기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이번 경제정책방향에는 서민에 대한 복지 정책이 상당히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이어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국내 수산업의 위기가 불거지고 있는데, 수산업자와 어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등의 현안 관련 정책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물가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한전과 가스공사 등 공기업의 경영 실적과 부채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석유류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는 가운데 최근엔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이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한전과 가스공사의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전기·가스 요금 현실화가 필요한데,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공공 에너지요금을 어떻게 현실화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허 교수는 또 “대중 수출 반사이익이 예전보다 줄었고, 정부 역시 중국 특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면서 “다만 이번 경제정책방향 발표에서 수출 다변화 루트를 어떻게 확보할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술 유출 문제가 계속 심화하고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다”며 “교육과 연금 분야에 대한 구체적 개혁 방안이 미흡한 점도 아쉽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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