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요금 인상안에도 마을버스는 울상… 월급도 못 주는 사장들
적자 심각한데 지자체 보조금은 일부만…경영악화 심각
”포퓰리즘이 지금 상황 만들었다…준공영제가 답”
“당장 내일 직원들 월급 주려면 2억원이 필요한데 수중에 1억원뿐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돈 구하러 다녀야 돼요.” (경기 고양시에서 마을버스 6개 노선을 운영 중인 운수업체 사장 A 씨)
지난달 경기 고양시에서 만난 운수업체 사장 A씨는 회사 상황을 묻는 질문에 말없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넸다. 부인에게 보낸 메시지 창에는 “자녀 적금을 해지해 회삿돈에 보태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A 씨는 지난 3년간 빚이 10억원으로 불어났다. 버스 1대를 하루 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50만원 수준이지만, 요금이 워낙 낮아 수익은 2만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인근 주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적자 노선 1개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A씨는 모 운수회사 사장이 빚 때문에 야반도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서울시가 버스요금 300원을 인상하는 방침을 지난 3일 발표했다. 버스업계 누적 적자가 8500억원에 달하면서 한계에 이르자 요금인상이 아니고서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시가 버스요금을 인상할 경우 수도권 통합환승할인제도 영향을 받는 다른 지역 버스요금도 함께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마을버스 운영사는 여전히 울상이다. 이용자 수가 훨씬 많은 시내·시외버스는 시·도 주도로 준공영제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은 반면 마을버스는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떨어지는 시·군이 운송원가에도 못 미치는 보조금을 주며 민간에 운영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버스 업계는 궁극적으로 준공영제 시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요금인상 안 하는데 지원도 차별…포퓰리즘 아니면 뭐냐”
수도권 시민들이 서울로 출퇴근하기 위해서는 광역버스 등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 집에서 시내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이 있는 곳까지 태워주는 마을버스를 탈 수밖에 없다. 수도권과 서울을 잇는 시내버스·지하철 노선이 대동맥이라면, 마을버스는 대동맥까지 이어지는 실핏줄인 셈이다. 수도권인 경기도는 마을버스 1만3700대가 하루 평균 530만명을 수송하고 있다.
경기도 마을버스는 파주시·용인시 등 일부 지자체가 일부 노선만 준공영제를 도입해 운영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민간업체가 운영한다. 시내버스 요금 결정 권한은 도지사에게, 마을버스 요금 결정 권한은 시·군에 있다. 다만 경기도가 버스요금 인상을 추진하지 않는 이상 시·군이 전격적으로 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버스업계 설명이다.
경기도 마을버스 요금은 지난 8년간 900~1350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인 독일(3990원)과 호주(2800원)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시카고는 요금 결정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있는 한국과는 달리 운송원가 50%를 자체수입으로 반드시 충당할 수 있는 요금체계를 갖추도록 법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다수 마을버스 업체가 고사 직전에 몰리면서 운행 대수는 점차 줄고,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 불편도 증가하고 있다. 김운남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원에 따르면, 100만 인구인 경기도 내 마을버스 인가 대수는 427대인데, 실제 운행 중인 것은 324대에 불과했다. 경영악화로 A씨처럼 적자 노선을 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6~18분이던 배차시간은 25~60분으로 늘어났다.
한 마을버스 업계 관계자는 “최저시급이 올라가고 물가도 올라가면 당연히 버스요금도 올라가야 맞지 않냐”며 “아직까지 1000원 안팎인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금 결정 권한을 가진 경기도지사나 서울시장은 대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 표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내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며 “결국 적자분은 소중한 세금으로 메꾸거나 민간업체에 전가된다. 시·도지사 자신을 위해 버스요금을 인상하지 않는 게 포퓰리즘이 아니면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환승할인제도에 따른 손실보전율 20% 수준
운수업체들은 적자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 환승할인제도를 지목했다. 마을버스를 탄 뒤 지하철 환승을 할 경우 시민은 1350원을 내면 되고, 1350원을 마을버스와 지하철이 나눠 갖는 시스템이다. 절반씩 나눠 가지면 손해액인 675원을 지자체가 보존해 줘야 하는데, 손해액의 20% 수준만 지원해 주는 식이다. 나머지 80%는 오롯이 운수업체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기도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2008년 경기 마을버스 환승손실액은 342억원이었는데, 120억원만 보전돼 보전율은 35.1%에 그쳤다. 보전율은 2011년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작년에는 20.8%까지 떨어졌다. 환승손실액이 980억원에 달하는데, 보전금은 204억원밖에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같은 지역 시내버스와 비교해 15%p 차이가 난다. 2008년 44.3%에 달했던 시내버스 환승손실보전율은 2017년 24.5%로 매년 하락했으나, 이듬해 26.9%로 반등하기 시작해 2022년에는 35.8%까지 올랐다.
마을버스 업계에선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기준이 되는 운송원가가 제대로 책정되지 않는다고도 주장한다. 운송원가란 버스 1대를 하루 동안 운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기름값을 포함해 타이어·엔진오일 등 부품값 등 버스 운행에 필요한 각종 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경기도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은 작년 기준 운송원가가 51만5000원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지자체는 38만~48만원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지자체는 1~2년 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운송원가를 산정하는데 그 사이 기름, 타이어 등 원부자재와 인건비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는다.
경기 용인시에서 마을버스을 운영하는 업체 사장 B씨는 “운송원가가 50만원인데, 지자체는 40만원 수준으로 맞춰버린 것”이라며 “운송원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지자체 운송원가 기준을 적용해도 10만원을 줘야하는데 7만원만 주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마을버스에도 준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준공영제란 시·도가 노선 설정권을 갖고, 운수업체는 여기에 맞춰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익금이 발생하면 실적에 따라 배분하되 적자가 나면 시·도가 보조하는 방식이다. 이미 서울시는 시내버스에 한해 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고, 경기도는 시내버스 일부 노선만 시행하던 것을 모든 노선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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