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가 못 견디고 폐업 결정한 백병원, 외국인 관광객 병원으로 돌파구 마련하나
지속된 저수가 의료정책 등의 여파로 폐업을 결정했던 백병원이 외국인 관광객을 받는 '글로벌 K-메디컬 허브'로 재편해 병원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추진이 결정된다고 해도 '영리병원', '저수가'등 의료계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4일 서울시 등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전날 서울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선생의 후손인 백진경(64) 인제대 멀티미디어학부 교수는 최근 인제학원 이사회의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을 공개 반대했다. 백 교수는 서울시청에서 강철원 정무부시장을 만나 서울백병원을 '글로벌 K-메디컬 허브'로 만들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교수는 서울백병원 폐원에 반대한 조영규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과 장여구 인제대 의대 교수와 함께 "서울백병원은 코로나19 이후 늘고 있는 명동 지역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건강검진 등 특화한 K-의료서비스 센터를 구축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백인제 선생의 조카인 백낙환 인제학원 전 2대 이사장의 둘째 딸이다. 백인제 선생의 첫째 아들인 백낙조 전 이사장(초대)과 함께 백병원의 중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백병원이) 병원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82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백병원의 폐원 문제를 두고 의료계와 정치권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장기간 지속해온 저수가 정책을 고치지 않고는 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면서 이번 백병원 사태의 해결도 결국 미봉책이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현행 저수가 체제에서 의료기관을 유지·운영하는 것은 적자를 면하기 힘든 대한민국 의료의 난맥상과 궤를 같이한다"면서 "한 마디로 의료 사업이 적자를 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미봉책만을 제시하는 안일한 대처보다는 1·2·3차 의료기관 모두 적정 의료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대학병원뿐 아니라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서울백병원 폐원 사태를 정부 책임으로 지목했다. 대개협은 "현재 모든 건강보험 급여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박리다매를 통해 생존하거나 비급여를 통해 수익을 보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가격의 하락과 의료 과수요는 미용성형은 물론 경증질환이나 유명병원과 대형병원 쏠림현상으로 1차 의료기관이나 중소·지역병원들은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반면 서울시는 지난달 20일 폐원 결정을 한 백병원 부지에 상업용이 아닌 의료시설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한 상태다. 의료공백으로 인해 도심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불편을 겪을 것을 우려한 조치다. 서울시와 중구는 서울백병원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 결정안을 제출하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환자로 받을 경우 '제주 영리병원 논쟁' 등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이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이 나올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경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영리병원을 열었으나 제주도는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한 조건부로 병원을 허가해줬고, 이후 녹지병원 측은 현행 의료법에 따라 병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면서 내국인도 진료를 허용해줄 필요가 있고, 따라서 해당 조건이 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녹지병원은 이 사건으로 제주도와 3심까지 법적으로 다퉜고,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한편 백낙환 전 이사장은 지난 2014년까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백낙환 전 이사장이 물러난 이후에는 장녀인 백수경 대표가 재단 이사로 일했지만 지난 2018년 재선임에는 실패했다. 백진경 교수는 오는 8월 인제대 총장 선거에 나갈 예정으로 알려졌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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