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패널’ 거르기? 국민의힘 ‘출연자 명단’ 요구에 방송사 ‘한숨’
방송사·패널들은 불만…“계속 눈치 보고 위축시키려는 의도냐”
(시사저널=변문우·구민주 기자)
국민의힘에서 최근 '이념 편향' 논란에 휩싸인 일부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들에 '출연진 리스트'를 뽑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영방송 개혁 선봉에 선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예고한 '좌파 출연자 전수조사·검증'의 일환으로 보인다. 방송사 일각에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이 과거 방송분까지 들춰내며 출연진 리스트를 요청하는 것은 '방송 길들이기'라는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4일 시사저널의 취재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실에서 최근 일부 방송사들에게 '패널 명단'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원실에선 방송사의 패널 섭외비용 지급표 기준과 관련 예산 등 세부적인 자료도 함께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 방송사 PD A씨는 시사저널에 "올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이후부터 박성중 의원실에서 우리에게 패널 명단 제출을 요청해왔다"며 "심지어 공영방송연대와 같은 일부 보수단체들에서도 자료제출을 요구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방송사의 PD B씨도 같은 고충을 털어놨다. 특히 B씨가 명단을 요청받은 프로그램의 경우는 이미 종료된 지 몇 개월이 지난 경우였다.
이 같은 여당의 행보는 앞서 예고했던 '좌파 출연자 전수조사'의 과정으로 보인다. 앞서 박성중 의원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등은 일부 공영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의 패널이 좌파 쪽으로 편향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라디오 프로그램들의 '이념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바 있다.
박 의원은 지난 5월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방통위가 수수방관해서 KBS·MBC·YTN도 좌파 패널에 점령당했다"며 "민주당 민노총 방송으로 전락한 라디오 프로그램들의 정상화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가짜 발언을 일삼는 좌파패륜 출연자들을 전수조사하고 검증해서 모든 고발 조취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방송사 측에선 불만이 쌓여가는 분위기다. A씨는 "심지어 지난해 진행된 방송분에 대해서도 최근 정부여당에서 다시 파고 있는 분위기"라며 "이번 정권에서 이 같은 행보들은 별로 새롭지도 않은 행보들이라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적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B씨도 "사실 프로그램 홈페이지만 가도 누가 언제 어떤 주제로 출연했는지 모두 나와 있는데, 이런 요청을 계속해 방송 제작에 지장을 주고 있다"며 "'괴롭힘'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방송을 만들고자 국민의힘 측 의원에게 여러 차례 출연 요청을 보내도 원하는 방송사나 내용이 아니면 출연조차 하지 않으면서, '출연자 명단'으로 '좌파 패널'만 출연시킨다는 지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방송에 출연한 일부 패널들도 반발하는 모양새다. 특히 일각에선 방송사와 출연진을 계속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성중 의원실에서 요청한 명단에 포함된 한 패널은 "이미 수개월 전 종영시킨 방송의 패널 명단을 지금 요청하는 이유와 명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라며 "방송사와 출연자들을 계속 눈치 보게 하고 위축시키려는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패널은 "이동관 후보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최종 임명되면 저도 이제 방송계에서 떠나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에 대해 국회 과방위 소속인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시사저널과 만나 "국민의힘 측 행보는 방송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 최고위원은 "단순히 패널 명단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패널을 조정할 의도로 요청했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방송편성에 개입할 소지가 있는 것"이라며 "방송법상 누구도 방송편성에 대해 관여하지 못하게 돼있다. 만약 (의원실에서) 패널 선정에 영향을 미칠 의도를 가지고 요청했다면 이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성중 의원실에선 오히려 의정활동 내용을 방송사 측에서 유출한 것이 더 문제라는 입장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의정시스템을 통해 방송사에 공식 자료요청을 한 것"이라며 "특히 공영방송 등의 경우는 법적으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 의원실에서 자료 요청을 하는 것은 의정 활동으로서 계속 해오던 일이고 특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방송사에 자료를 요청한 배경에 대해선 "방송사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패널들에게 금액을 주고 있는지 그런 실태를 파악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주먹구구식으로 방송사 본인들 마음대로 누구를 섭외하고 돈을 나가게 할 수는 없다. 또 합당하게 패널들에게 금액이 지급됐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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